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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조용한 침투력.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가난한 사람들’을 읽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것도 그런대로 먹고살만한, 이를테면 남들보다 적은 월급을 받고 투덜댄다거나,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지 못해 불평을 해댄다거나, 명품 옷이나 신발을 사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사는 정도의 가난이 아니라, 아주 찌들 대로 찌든 가난이 자주 묘사된다. 그 가난은, 가끔 가지지 못한 자들이 가진 자들보다 풍족하게 가지곤 하는 연민이랄까 사랑이랄까 따뜻함이랄까 하는 심리까지도 마침내 야금야금 갉아먹고야 마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는 가난이다. 슬금슬금 육체가 정신을 장악하고 궁극적인 승리의 칼을 꽂아 확인 사살까지 하는 그런 조용하고 무서운 가난. 옳고 그름과 선악의 경계마저도 어느새 무너져 버리고 마는 그런 가난. 적나라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는 독자에게 혹시라도 남아있을 조금의 낭만까지도 바짝 말려 버리기 마련이고, 그제야 비로소 소설은 지독한 현실성을 갖게 된다. 이 마법, 소설인지 르포르타주인지 독자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이 마력. 이는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아니 읽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매력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작가로 등단시킨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들의 특별할 것 없는 비참한 일상이 읽기 힘들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들을 단순히 부자에게 억눌린 동정의 대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가진 자는 가해자, 가지지 못한 자는 피해자, 이런 식의 평면적인 구도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겐 그야말로 소설일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너무나 입체적이고, 너무나 날 것 그대로여서 너무나 깊숙이 폐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도 피라미드 승자독식 체제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죄를 저지르고 음탕하며 탐욕적임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묘사하기도 한다. 특별히 이 작품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나중에 그가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보여줄, 어떤 커다란 사건을 포함하는 서사의 배경으로 그치고 마는 게 아니라 전면에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이 작품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의 심리가 아주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작품 속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난한 중년의 남자와 고아 신세의 젊은 여자 사이에서 오가는 애틋한 편지로만 구성된 서간체 소설이기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일인칭 관찰자 시점에서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훨씬 더 직접적이고 크게 울린다. 편지 형식은 확성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찌 이렇게까지 비참할 수 있을까 하는, 연민과 동정을 훌쩍 뛰어넘어서 어느새 감히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처절함에 숨을 고르게 된다. 제발 해피 엔딩으로 끝나거나, 차라리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해서 구구절절한 편지 왕래가 끝나버리고 어서 빨리 마지막 페이지로 직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열린책들 판으로 이 작품은 약 200페이지 정도로 짧은 편이라 (참고로 5대 장편은 평균 천 페이지 정도 된다) 나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재 중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어쩌면 가난이라는 상황과는 조금 별개로도 느껴져서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는 부분은 주인공인 두 가난한 남녀 사이에서 현저히 드러나는 문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추운 겨울에도 얇은 외투만을 걸치고 다녀야 할 만큼, 심지어 신발이나 단추 하나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의 가난에 처한 마당에 무슨 문학 타령이냐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가난과 문학’이라는 어색한 조합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서 녹여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석영중이 역자 후기에서도 썼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쓸 당시 자신의 처지와 문학을 향한 자신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 구멍 난 신발을 신고 갈아입을 옷 하나 없을 정도로 극도의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남자, 마까르 제부쉬낀은 저 위대한 푸쉬킨의 작품을 폄하하는 반면, 오히려 같은 하숙집 다른 방에 거주하는 삼류 소설가, 라따자예프의 작품을 위대하다고 할 정도의 눈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가 하면, 병약한 여주인공, 바르바라 도브로셀로바는 비록 어릴 적부터 기구한 운명에 처해져 본인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가난한 처지에 내몰린 고아이지만, 한때 마음을 주었던 한 남자와의 슬픈 인연 덕분에 책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어느 정도 교육도 받은 본 사람으로서 문학작품을 분별할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다. 두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도 이렇듯 문학에 대한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가 보여주려고 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가진 자들과 정신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낭만과 과장 없이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결말에 이르기까지는 이 소설은 큰 반전은커녕 큰 사건 하나 터지지 않는다.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는 가난과 돈이 각 작품의 핵심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주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유독 그러한 서사가 고스란히 빠져있다. 그래서 더욱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피부에 더 와 닿도록 하는 효과를 내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가난 때문에 바르바라는 원하지 않는, 심지어 과거에는 원망하기도 했었던 남자와의 결혼을 선뜻 선택해 버리고 말며, 가난 때문에 마까르는 친딸처럼 사랑해 마지않던 바르바라를 그저 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마까르를 통해 그려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 이를테면 어쩌다 돈이 생겼을 땐 기뻐하고 감사하다가도, 돈이 탕진되고 익숙한 가난에 처해지면 다시 운명 같은 비굴함과 처참함의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자리 잡고 길들여지는 모습, 나아가 물리적인 궁핍이 정신적인 궁핍까지 자연스레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돈이라는 것의 힘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그저 아무런 답도 없이 먹먹한 감정에 한동안 빠져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런 가난의 권세는 너무나도 조용히 사람을 무너뜨리고 있기에 나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차라리 이 작품 속에서도 어떤 사건이라도 터졌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러면 적어도 가난의 조용한 침투력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

 

도스토예프스키 읽기
1. 죄와 벌: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322765477768221
2. 백치: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381911478520287
3. 악령: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671867029524729
4. 미성년: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791541264223971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236636616381098

6. 죽음의 집의 기록: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311510975560328

7. 가난한 사람들: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633890636655692

8.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272627856115307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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