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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그리고 이율배반적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분신’을 읽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내뿜는 장광설에 휘말려 수백 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활자들의 바닷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말로만 듣던 도스토예프스키를 어디 한 번 읽어보겠노라고 굳게 다짐까지 했던 많은 독자들이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책을 덮게 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장광설 때문일 것이다. 마치 전혀 뜻하지 않은 시공간에서 엉뚱한 적을 만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처참하게 패배하고 만 것 같은 당혹감이랄까. 여기가 어딘지, 이건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딴소리들의 향연은 끝도 보이지 않는 파도가 되어 어느새 독자들을 덮쳐온다.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다는 것은 여태껏 그 어느 작가도 데려가지 않았던 당혹감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도스토예프스키가 선사하는 당혹감은 장광설 말고도 하나 더 있다. 인간의 이율배반성, 그것을 날것 그대로, 때론 기괴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의 독백, 대화,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저 위대한 망치의 철학자 니체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로서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을 만큼, 도스토예프스키의 심리 묘사는 탁월하다는 말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인데, 이는 인간 심리의 입체성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입체성이란 곧 인간의 분열된 의식과 이율배반성에 기반을 둔다.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착한 놈, 나쁜 놈의 평면적인 구분, 혹은 선과 악의 선형적이고 이분법적인 대립 따윈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은 사실 선하기도 하면서 악하기도 하고,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 빠져 있다가도 어느새 오만하고 이기적인 자기애에 심취하기도 하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가도 갑자기 호연한 대장부가 되어 스스로 자기 안의 심리적 붕괴를 극복해내곤 하는 유일한 존재자이지 않은가.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는 말은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만의 독특한 세계에서 두드러지는 의식의 분열과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심리에 독자들이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를 화려하게 작가로 등단시켜준 첫 번째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벨린스끼는 이 두 번째 소설 ‘분신’에 대해서는 혹평을 남겼기로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도스토예프스키 스스로는 이 작품이야말로 자기를 유명한 작가의 반열에 들게 해 줄 거라고 확신에 찬 기대까지 가졌었지만 말이다. 과연 이 소설은 어떤 작품이길래 두 세기가 지나는 오늘날까지도 어쩌면 불명예라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것이며, 어째서 그런 오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계속 읽히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서 언급한 두 번째 당혹감에 있다. 이율배반성과 의식의 분열. 이 작품은 이 두 가지가 본격적으로 등장인물을 통해 발현되기 시작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에서도 남자 주인공 마까르 제부쉬낀을 통해 그런 모습을 간간히 보여주기도 했었지만, 작품의 중심축을 이룰 만큼 중요한 무게를 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분신’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분열된 자아와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심리가, 환상이 환상인지도 모를 만큼 심각한 정신병에 걸린 주인공을 등장시키면서 리얼하게 드러난다. 

헤세를 읽어내는 키워드는 아무래도 자아의 발견과 성찰, 성장과 성숙이라 할 수 있다. 헤세는 작품들을 통해 분열된 자아를 자주 선보인다. 가령, ‘황야의 늑대’, ‘페터 카멘친트’, ‘싯다르타’에서는 자아가 두 개로 분열하여 한 인물 안에 공존하면서 변증법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수레바퀴 밑에’, ‘게르트루트’,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이미 분열된 두 개의 자아가 독립된 두 인물로 등장하여 갈등과 대립을 통해 합일을 지향한다. ‘합일성’이야말로 헤세의 모든 작품에 걸친 그의 사상을 한 번에 정리해주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헤세가 ‘분열’이라는, 자칫 부정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개념을 작품 속에서 사용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헤세에게 있어 모든 분열은 온갖 시련과 고뇌를 통해 결국 하나로 합쳐지는 ‘합일성’을 향한 과정, 혹은 발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이 작품 ‘분신’에서 나타나는 분열의 방향은 결국 정신병원을 향한다. 헤세에게 있어서 ‘합일’을 위한 수단 혹은 과정으로 사용되었던 ‘분열’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더 심화되어 ‘자기 파괴’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헤세의 해피엔딩이 도스토예프스키 버전에서는 새드엔딩으로 나타난다고나 할까. 두 위대한 작가 모두 인간 심리를 파헤치고 심연을 들여다본 번뜩이는 통찰을 우리에게 선보이지만, 이토록 그 끝이 다른 것은 두 작가의 작품을 읽어내는 말 못 할 즐거움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단, 생각 같아선 성인이 되기 전의 독자들에겐 도스토예프스키보다는 헤세를 권하는 게 건전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덜 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플롯은 아주 간단하다.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한 분량으로 약 250 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중편소설이라 분류할 수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단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9등 문관, 즉 하급관리 신분으로 살아가는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이라는 한 중년 남자다. 저자는 느닷없이 책의 앞부분에서 골랴드낀이 아침에 일어나 정신 산만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의사를 만나 그 앞에서 쭈뼛쭈뼛하며 한 문장도 제대로 속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다시 그 돌아가 보면 그 장면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의 초반부터 주인공은 뭔가 이상한 증상을 보여주다가, 작품이 진행되면서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작품의 끝에선 주위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으로 수송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아 우리의 주인공 골랴드낀은 정신병자였음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와 모든 면에서 너무도 똑같은 인물, 즉 그의 ‘분신’이 등장하는 시점은 그의 정신병 증세가 기하급수적으로 심각해지는 계기로 이용된다. 끝내 골랴드낀은 환상까지 보게 되었던 것이다. 

작품 중간에서는 골랴드낀이 정신병자라고 추측만 할 수 있을뿐 확신은 가질 수가 없는데,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주인공이 정신병자라는 사실에 대해 확실히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쓰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점을 일부러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벨린스끼를 비롯한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공개하기 전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음을 졸이며 사람들을 소위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놀라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혹시 들떠있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마음 한편에선 조금 안쓰러운 기분마저 든다. 물론 결국 나중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대작가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말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미성숙한 (물론 이 ‘미성숙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내가 이미 그의 5대 장편소설을 포함하여 다른 작품 몇 편도 읽었기 때문이다. 즉, 그의 후기 작품들과 비교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임을 밝혀둔다) 이 작품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그의 후기 작품들의 밑거름이 되었던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분열된 의식과 이율배반성은 그의 대표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얼마나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던가! 

누군가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나가는 방법으로 작품들이 쓰인 시간 순을 따르기도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거의 반대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방법이 시간 순을 따르는 방법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진화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알아챌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다음에 읽을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도 벌써 책장에서 나를 기다린다. 질리지가 않는 도스토예프스키.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나의 선생이다.

#김영웅의책과일상

 

도스토예프스키 읽기
1. 죄와 벌: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322765477768221
2. 백치: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381911478520287
3. 악령: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671867029524729
4. 미성년: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791541264223971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236636616381098

6. 죽음의 집의 기록: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311510975560328

7. 가난한 사람들: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633890636655692

8. 분신: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717746821603406

9.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27262785611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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