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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가 전진이 되다.

 

C. S. 루이스 저, ‘순례자의 귀향’을 읽고.

 

이 책의 원제는 Pilgrim’s Regress. 저 유명한, 존 번연의 Pilgrim’s Progress (천로역정)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로역정이 17세기 작품이라면, ‘순례자의 귀향’은 20세기 천로역정인 셈이다. 그것도 루이스의 향기가 짙게 배인 천로역정이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의 플롯은 흡사하지만 (당연하다. 루이스가 천로역정 플롯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제목에 사용된 두 단어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Progress가 ‘전진’을 뜻하는 반면, Regress는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천국으로 가는 길이 직선 코스라고 가정한다면 (물론 천국은 어떤 특정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천로역정은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알다시피 소설이다),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여러 차례 곁길로 들어서서 뜻하지 않았던 위기를 만나게 된다. 가장 짧은 거리인 직선 코스가 존재함에도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불필요한 우회로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항상 외부에서 주어진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 크리스천은 다시 제 길로 들어서며, 마침내 천국 문에 이른다.

 

이 작품의 주인공 존은 한술 더 뜬다. 서쪽의 섬 (갈망의 대상이자 천로역정의 천국과 같은 상징적 의미)을 향하여 길을 나선 존은 여러 환란을 겪다가 마침내 다다른 협곡 너머에서 어렴풋하게 보인 그 섬이 출발지 퓨리타니아에서 보았던 지주 (하나님을 상징한다)의 성이라 불렸던 동쪽 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 속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아니다. 여전히 둥글지만 훨씬 작은 세상이다. 존이 그 산을 마주하게 된 것은 그가 둥근 세상을 한 바퀴 돌았기 때문이었다. 종착지라고 생각했던 그 점이 출발지의 뒷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존은 뒷면으로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여태껏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만 했다. 말하자면, 후퇴다. Regress는 존의 모든 여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Regress는 Progress가 된 셈이다. 이 점이 루이스의 천로역정 (바로 이 책, 순례자의 귀향)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아주 중요한 차이를 내는 부분일 것이다.

 

전진하지만 둘러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이 천로역정에서 상징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면, 전진한다고 믿었으나 결국 그것이 뒤로 가는 것이었고, 그 끝에서 제대로 된 사실을 깨달으며 회심을 경험한 뒤 새로운 눈을 뜨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목적지에 다다르는 인간의 모습은 ‘순례자의 귀향’에서 도드라진다고 볼 수 있다. 한 방향성을 그린 천로역정의 Progress보다 완전히 반대되는 두 방향성을 담은 ‘순례자의 귀향’의 Regress가 가지는 의미는 독자들에게 의외로 깊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 부분이 표현된 곳을 아래에 발췌해본다. (참고로 처음 존이 서쪽으로 향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길동무의 이름은 ‘미덕’이었고, 가이드 없이 혼자 걸어갈 때가 많았지만, 협곡을 건너고 (회심을 한 뒤) 다시 동쪽으로 길을 되돌아갈 때는 ‘슬리키스타인사우가’라는 가이드가 계속 함께 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성령의 인도를 상징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되돌아가야 해요. 그게 앞으로 가는 길이에요. 유일한 경로는 다시 동쪽으로 가서 개울을 건너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Regress는 Progress가 되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이 점을 유념해서 읽게 된다면, 아마 내가 느꼈던 심오함과 뜻밖의 감동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 인간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지 않을까 한다. 되돌아가는 길이 앞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 그게 올바른 길을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작품은 루이스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도 여러 사람들과 장소의 이름이 상징적인 개념을 나타내어 (이를테면, 믿음, 우유부단, 고집, 질투, 자선, 굴욕의 계곡, 허영의 시장 등) 알레고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자칫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유독 루이스의 이 작품에서는 그 상징적인 이름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기스문트 계몽’이라는 등장인물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뜻하고, ‘마더 커크’는 교회를 상징하며, ‘차이트가이스트하임’은 시대정신을 의미하고, ‘놋스토’는 ‘쓸모없는 곳’을 뜻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천로역정과 비슷한 플롯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알레고리의 수준이 나 같은 일반인들이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품 뒤에 붙은 ‘저자의 말’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이 작품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난해함은 이 작품이 루이스의 회심 후 단 2주 만에 일필휘지로 써진 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많은 부분 용서가 되는 듯하다. 이 책의 번역자인 홍종락이 말한 대로, 루이스의 다른 모든 작품들은 어찌 보면 이 작품의 해제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홍종락이 추천한 것처럼, 루이스가 노년에 그의 회심기를 잘 담아놓은 작품 ‘예기치 못한 기쁨’을 함께 읽는다면, 이 작품의 배경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작품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 아니면 절대 채울 수 없는 갈망과 그 갈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루이스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스 읽기

1. 예기치 않은 기쁨: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098756400169131

2. 고통의 문제: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126994814011956

3. 헤아려 본 슬픔: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138735802837857

4.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471812539530180

5. 천국과 지옥의 이혼: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559914580719975

6. 순전한 기독교: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747418798636218

7. 시편 사색: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816749868369777

8. 순례자의 귀향: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747954605249294

#홍성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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