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피로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2. 22. 08:16
피로.
밀린 설거지를 하고, 어느새 또 한가득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책상에 앉아 물끄러미 동태 눈으로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반이다. 오늘은 이제 곧 비워야 할 아파트 점검이 있는 날이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4시에 퇴근했는데도 어찌 남는 시간은 더 줄었다. 열심히 노동한 이후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부엌과 거실을 쳐다보며 약간의 허탈함을 느낀다.
오늘따라 아이가 포도가 먹고 싶다고 해서 집에 오는 길에 산 포도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물기를 탈탈 털어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 먹으니 그 씁쓸한 맛이 꼭 내 기분 같기도 하다. 이런 달콤 쌉싸름한 맛을 내는 과일이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참 인생은 그래도 살아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은근히 위로도 된다.
책을 좀 읽고 싶은데, 몸이 무겁고 눈꺼풀도 무겁다. 오늘도 연구소에 앉아 실험결과를 분석하다가 깜빡깜빡 졸았던 적이 두 세번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운동을 거의 매일 하고는 있지만, 운동해야 건강하지만, 오늘은 운동할 힘도 없다. 요즘 알러지도 심해 연신 코를 풀고 또 막힌 코 때문에 고생하느라 더 피곤한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내일은 금요일. 아, 주말이란 게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