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처분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3. 3. 13:48

처분.

효율적인 처분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잘 버리기 위해서도 비용이 드는 셈이다.

어젠 냉장고와 냉동고를 정리했다. 잊혀졌던 여러가지가 산재되어 있었다.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하는, 그러나 반갑지만은 않은 망각의 산물들. 그러나 언젠가는 어쨌거나 큰 맘먹고 처리해야만 하는 것들.

당장 데워 먹을 수 있는 음식 같은 경우는 그냥 한끼 반찬으로 먹으면 되니까 처리가 간단하지만, 어떤 특정한 요리를 하기 위해 사용하고 남은 재료의 경우, 이를테면 오뎅이라던가 홍합살이라던가 새우라던가 하는 그냥 버리기는 아깝고 또 그것만 따로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은 이제 곧 냉장고 전원을 꺼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는 난감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잠시 앞으로 며칠 간 먹어 치워야 할 식단이 반강제적으로 짜여지고야 말았다.

오뎅은 떡볶이를 해먹으면 되고, 홍합살은 미역국 끓여 먹으면 되고, 새우살은 스파게티 만들 때 넣으면 될 것이다. 얼려진 생선들은 구워서 해치워야지. 그런데 떡볶이를 위해서는 떡을 사야 하고, 고추장을 사야 하고, 고추가루, 양파, 파 등을 사야 한다. 미역국을 위해서는 미역과 마늘을 사야 한다. 참, 국간장도 없다.

난감하다. 떡을 사면 남을 게 분명하다. 고추가루나 고추장, 마늘과 국간장과 미역도 모두 남을 것이다. 젠장. 그러면 그것들을 또 처리하기 위해 오뎅을 사야 하고 홍합살을 사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런 순환 논리 속에 갇혀 혈압이 오르다가 일단은 냉동고에 그냥 도로 다시 넣어두었다. 잠시 휴전.

효율적인 처분은 투자를 필요로 하나, 그 투자는 절대 처분할 양을 넘어서면 안 된다. 잘 버리는 것은 그냥 버려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