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자존감.
1. 위로.
“괜찮아. 그리고 너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주눅들 필요 없어. 그렇게 기죽어 있지마. 너도 사랑 받을 자격 충분히 있어.”
뻔한 말이지만, 그리고 과학적으로 납득할 만한 어떤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말도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가끔 이런 말 듣길 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작은 위로란, 과학적인 증거 제시보다는 타자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일에 방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 초반에 잠깐 빛나던 모든 순간들도 결국은 자존감의 점진적인 하향곡선 안에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여정, 그리고 이런 곤두박질칠 순간이면 기적처럼 가끔 나타나는 회복기를 통해서 자신의 그 하향곡선도 하나의 관점에서 해석된 산물일뿐 존재론적인 정의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여정으로 이루어진 건 아닐까. 내 존재가 의미 있음을 내 입이 아닌 타자의 입을 통해 듣고 확인 받고 싶은 마음. 우린 인간이다.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 주눅들지 말자.
2. 아집.
자존감이 바닥을 칠 정도로 주눅들어 있는 타자 앞에서 겸손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자를 본다.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아무리 바른 소리라도 틀린 말이 된다는 사실을 이 사람은 알고나 있을까. 자신이 교훈적인 말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스스로 지혜자임을 자처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지혜 따위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타자의 입장을 헤어리지도 못하는 교훈 따위가 꺼져가는 불꽃 앞에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텍스트는 결코 컨텍스트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텍스트의 옳고 그름은 독립된 텍스트 자체로만 판단할 수 없다. 텍스트는 컨텍스트와 끊임없는 대화 가운데 탄생하는 법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장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혼자서 컨텍스트와 전혀 맞지 않은 말을 지껄이면서도 마치 자신의 말이 아주 권위 있는 자의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떵떵대고는, 그 지혜의 말을 과연 알아들을 수 있으면 알아들으라고, 마치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구는 자. 고상한 이념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이념이 아닌 아집이다. 그는 설교자도 이념가도 아닌 사랑 받고 싶은 고집쟁이 노인일 뿐이다. 권위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온 역사를 부인하진 힘들겠지만, 그 따위의 권위는 개나 물어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권위는 구걸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