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의 깊이
연민의 깊이.
타자에 대한 연민이 보다 넓고 깊어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어쩌면 자기자신을 포함한 인간, 즉 인간이란 존재자 전체에게 품었던 기대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 아닐까.
살다보면, 종종 영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또한, 방황 끝에 겨우 인생의 방향을 가늠하게 될 즈음, 저만치 앞서있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을 자신의 인생 모델 내지는 우상으로 삼게 되기도 한다. 닮고 싶은 사람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더 살다보면, 그렇게 닮고 싶어했던 사람의 뒷모습을 맞닥뜨리는 순간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그 동안 그 사람에 대해 쌓아왔던 신뢰와 그 신뢰에 기반한 여러 가치관들이 뼈저린 실망감과 상실감을 동반한 채 한꺼번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거나 무너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 가치관의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유도한다.
뿐만 아니다. 좀 더 살다보면,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실망과 좌절을 맞이할 때가 어느날 도적같이 임하게 되는데, 이때는 자신이 우상으로 삼았던 사람에 대한 실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감정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아무리 우상이었다 하더라도 타자였기에, 자기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세계관의 변혁을 가져오는 중대한 시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린 인생에서 큰 두 가지 실망 (닮고 싶은 사람, 그리고 자기자신에 대한)을 거치면서 일종의 의식적 진화를 하게 되는데,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와 사건, 타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높이와 위치를 재조정하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을만큼 일반적인 과정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아직 이 과정 중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망과 상실을 느껴보지 않고 타자에 대한 연민이 생겨날 수 있을까.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잘난 점을 닮아가는 순간에 있지 않고, 오히려 약한 점, 못난 점, 한계점 등을 그 사람 역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에 있지 않을까. 아무리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조절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하며, 그 사람도 알고보면 헛점 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얻는 실망과 상실, 그리고 묘한 위안. 이 실망과 상실과 위안을 통과하여 보다 깊은 눈을 갖게 되는 과정이 곧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능력보다는 한계를 인지하게 되면서 우린 비로소 사람을 알아가는 게 아닐까. 연약함과 불완전함, 한계와 허점 등을 모두 가진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도 나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고,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지만 소망을 버리진 않기로 하며, 서로가 가진 유한함 때문에 서로 평등한 위치에서 도와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 연민은, 사람을 아는 만큼 깊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