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공부와 훈련의 효과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8. 26. 06:04

공부와 훈련의 효과.


일부러 못난 면이나 약한 면을 드러내면, 그제서야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뻔하고 잘 정제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자신의 공감능력을 증명한다. 위로나 적절한 충고를 지혜롭게 잘 해줌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주목받는다. 참나… 자기애의 표출도 참 여러가지다. 


여러모로 존중과 배려의 뉘앙스가 적절히 담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누가누가 지혜로운 위로의 말을 건네는지 시합이라도 하면 충분히 1등 먹을 수 있을 만큼 잘 정제된 말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재미있게도 난 거기서 교과서를 접하는 기분이지 위로나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때는, ‘아, 이 사람도 저 책을 읽고 적용하고 있구나’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결코 그 노력을 폄하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 노력의 화살이 결국 자기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위로란 위로 받을 사람에게 결국 와닿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저  "난 위로를 지혜롭게 잘 하는 사람!" 인정을 받으려는 게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 이상해져서 위로를 한답시고 오히려 비난과 질책을 일삼아 상처를 더 키우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해야 지혜로운지 여기저기서 주워듣거나 공부를 해서 잘도 알아내는 것 같다. 그래서 소기의 성과를 많이 거둔 것 같아 보인다. 사람들의 말만 보면 예전보다 많이 지혜로워진 것 같다. 


분명 위로를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면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사람들의 심리는 그런 잘 정제된 말을 신무기로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닥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훌륭한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그 말을 배우기 이전과 동일한 심리가 느껴질 때면, 오히려 나는 위선을 느끼고, 우리 모두 마치 가면 무도회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스스로가 그 말을 해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위로 받을 사람은 사라지고 자기자신의 정제되고 훈련된 자아만 남는다.


사람들은 잊은 것 같다. 함부로 내뱉는 말 대신 배려의 말을 지혜롭게 하자는 시도의 핵심은 마음에 있지 단지 말의 내용에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지혜로운 말? 존중과 배려가 충분히 느껴질 만큼 잘 정제된 말? 글쎄… 삐딱한 내 눈엔 작지만 투박한 하나의 밀알에서 그것을 빻아 잘 정제한 밀가루에서보다 사람의 진정성이 더 잘 보이는데… 공부와 훈련이 위선을 더 강화시키는 이 역설적인 효과를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