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

좋은 글이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1. 26. 07:51

좋은 글이란?

 

함부로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중함을 잃지 않고 유머까지 곁들여 사이다 역할을 해내는 글이 대중들에겐 잘 어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스타일의 글도 진정성이 결여되면 경박하게 느껴진다. 자칫하다간 아이가 떼쓰는 것 같거나, 누가 뭐래도 난 내 길을 가겠다는 독불장군 인상을 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너무 진중한 글도 좋지 않지만 멋쩍은 형식만 남은 글은 더 좋지 않다. 차라리 멋들어지지 않더라도 꾸밈없이 솔직한 글이 난 더 좋다.

 

말초적인 자극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글, 알맹이가 쏙 빠진 글이 넘쳐나는 시대다. 사람들은 영악해졌고 포장하는 일에도 능수능란해졌다. 실상은 알맹이가 없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글을 마치 판에 찍어내듯 제조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글에서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흐름이 소위 글쓰기를 배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겪는 과정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기 계발서를 탐닉하듯 글쓰기를 배우려고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채워지지 않은, 아니 점점 더 커져가는 욕망을 그대로 가진 채로 말이다. 여기서 나는 궁금한 점이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자발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배우고 싶은 글쓰기란 과연 어떤 글쓰기를 말하는 것일까. 잘 쓰고 싶다는 말의 이면에 어떤 다른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글쓰기 교실이나 글쓰기 노하우를 적어놓은 책을 보면 아주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것들을 가르친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단문 위주로 써라, 외래어를 사용하지 마라, ‘것’ 혹은 ‘의’ 등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등등. 다 맞는 말이다. 이런 걸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훨씬 유익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글쓰기가 잘 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혹시 가르침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내가 보기엔, 가르침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연습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배운 대로 쓴다면, 그리고 더 많은 연습을 한다면 분명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글을 쓸 때면 늘 그런 기본적인 지침을 떠올리며 주의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혹시 더 내밀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전달과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달과 표현을 잘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기술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쓰기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글쓰기 교실이나 책을 통해 배운 기본적인 기술이 큰 도움이 되겠지만, 보통 글쓰기를 배우려고 안달 난 사람들은 이런 수준은 이미 지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을 또 한 번 리마인드 한다거나 미처 몰랐던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고 해서 결코 글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글은 제삼자로부터 배우는 기술 따위로는 탄생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기술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기술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좋은 글을 쓰는 데에 방해거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기술은 기본을 갖춘 다음에 주어져야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질문을 바꿔보길 권하고 싶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에서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가요?”로 말이다. 글을 잘 쓰려는 마음이 단순히 자기 자신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이윤을 내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난 반드시 이렇게 질문을 바꿔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차피 좋은 글은 편법으로 샛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애당초 주어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도를 걷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글이 바로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의 정의가 만약 잘 전달되고 잘 표현된 글이라면, 거기엔 반드시 진정성이 필수다. 형식과 기술/기교는 좋은 포장지일 뿐이다. 중요한 건 알맹이, 즉 진정성이지 결코 포장지가 될 수 없다. 픽션/논픽션 구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정성이란 허구를 얘기하면서도 구현이 가능하다. 반대로 엄연한 팩트를 언급하는 데에도 진정성이 없으면 충분히 거리낌을 줄 수 있다.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글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형식과 비슷한 기술/기교에만 매달린 글을 써대기 시작하면 공장에서 인형을 찍어내듯 비슷비슷한 글들이 양산되기 마련이다. 마치 글쓰기를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써대는 어설픈 글의 양상처럼 말이다. 좋은 글은 고유한 개성이 드러나는 글이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글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고유한 개성은 아무리 훌륭한 글쓰기 선생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다. 스스로 찾아내고 연습하고 다듬어야 한다.

 

진정성과 고유한 개성. 글쓰기 기술/기교를 배우기 이전에, 혹은 배우면서 꼭 발견하고 연마해야 할 중요한 항목이다. 그러기 위해선, 때론 시인이 되기도 해야 하고, 기자가 되기도 해야 하며, 과학자가 되기도 해야 한다. 외부의 무언가를 전달,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반면, 내부의 무언가를 전달, 표현하기 위해선, 우린 때론 철학자가 되어야 하고, 때론 신학자가 되기도 해야 하며, 때론 심리학자가 되기도 해야 한다. 섬세한 관찰과 객관적인 성찰이 먼저라는 말이다.

 

어쩌면 이 제안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좋은 사람이 되도록 애쓸 필요가 있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반지성적이지 않고 무속적이지 않으며 편협하지도 않고 이기적이지도 않아야 한다. 대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자기 객관화를 할 줄 알면서 내면을 성찰할 수 있고 타자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마 글쓰기 교실 혹은 책으로부터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기본을 먼저 갖추자. 기술은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그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