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기대와 폭력 사이: 균열의 시작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5. 7. 08:18

기대와 폭력 사이: 균열의 시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은연중 같은 생각을 기대하게 된다. 나는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미 틀어져버린 어떤 인간관계의 원인을 머릿속으로 추적하다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바로 이 생각인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에게 이 생각은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또 하나의 무의식이 의식으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가깝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한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그 역이 항상 참인 건 아니다.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는 기작은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는 이유 말고도 수만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까운 사람에게 언제나 같은 생각과 같은 입장을 취하길 기대하는 건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 기대는 기대 자체로 머무르도록 해야 한다. 쉬이 지나칠 수 있는 이러한 경계를 함부로 넘어서게 될 때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의 균열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의도치 않게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 보이지 않는 폭력이 시작된다. 다양성을 존중하자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공통된 관심사 하나로 이루어진 집단 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함부로 실망했다느니 배신감을 느꼈다느니 하는 말을 내뱉는 이유 역시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말할 때, 혹은 상대방으로부터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할 때, 과연 그 말을 내뱉은 나는 객관적인 위치에 서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미 비뚤어진 눈에는 똑바른 것들이 비뚤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타자를 함부로 대상화하고 판단하고 악마화하는 사람의 말을 언제나 조심해서 들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