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가짜의 가벼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5. 30. 14:42

가짜의 가벼움.

막상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면 책을 읽는다. 답을 찾고 싶어서가 아니다. 책을 읽으면 답을 찾기는커녕 질문이 더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경계가 허물어지고 지경이 넓어진다. 이 과정은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 짧게 보면 양자 도약처럼 어느 순간 인식의 큰 점프를 경험하게 될 때도 있지만, 멀리 보면 점진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처음에 가졌던 질문은 어느새 질문 거리조차 되지 않을 만큼 작아지고 기대했었던 답도 의미를 잃게 된다. 마음과 생각이 확장되고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공부는 우리를 함부로 확신으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넓이와 깊이로 이끈다. 그리고 거기엔 불확실성, 다양성, 그리고 겸손함이 있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다 보면 초반엔 대부분이 어려움을 토로한다. 경솔하게 계획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판단해버리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자신의 실행능력에 대해서 자책을 퍼부으며 은근슬쩍 실행 중단을 선언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지속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무언가 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지속한 자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작지만 꾸준히 지속하는 것. 이 사소한 행동에 나는 많은 진리가 담겨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접근 가능하지만, 아무나 발견하지 못하는.

정해진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출발점에 서 있는 똘기 충만한 자의 열정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행동하지 않는 자, 그리고 지속하지 못한 채 출발점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대가리와 입만 큰 자들의 주특기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발 빠른 판단을 한답시고 까불거리지만, 그 판단의 근거는 깊이가 없다. 이것저것 출발점 근처에서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주워 들어 그 파편들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마치 그것이 길의 끝에 선 자의 말처럼 꾸며댄다. 마치 길에 끝에 서면 누구보다도 강한 확신과 정답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처럼 떠들며 스스로 거짓 선지자가 된다. 훈수 두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 정작 제대로 배우지는 않고 서당개 삼 년, 아니 삼십 년만 하다가 마치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 자기가 원하고 생각하고 지향하는 모습이 현재 자기 모습이라 철저하게 착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언변과 권력과 돈이 이런 작자들에게 어처구니없을 만큼 쉽게 주어지는 현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 한 가지는 아마도 이러한 모순일 것이다. 아무리 경험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놀라울 게 없지만, 당하면 언제나 놀라게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