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ping point
물은 섭씨 100도가 되어야만 끓는다. 섭씨 99도로 평생을 기다려도 물은 끓지 않는다. 이 점을 Tipping point라 부르기도 한다.
나아만 장군은 화가 났지만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종들의 충고를 들을 줄 알았다. 그 덕에 엘리사 선지자가 말한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행위를 직접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비밀스러운 고질병이었던 자신의 문둥병을 깨끗하게 치료받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곱번이란 횟수다. 보통 사람들은 일을 하는 과정 중에 연속적인 프로그레스가 보여야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일은 안되는 것이라 판단하고 그만 두고 만다. 본인의 상식과 지식과 경험에 의거한 '민첩한' 판단이 결국 일을 완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아만 장군은 달랐다. 나아만 장군이 여섯번째 요단강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에도 그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번씩 요단강에 몸을 담글 때마다, 어쩌면 기대했을지도 모를, 1/7만큼씩 피부가 점점 치유되어지는 조짐도 전혀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는 거기서 그만 두지 않았다. 마지막 일곱번째까지 행동에 옮겼다. 그 결과, 엘리사의 말대로 거짓말처럼 나아만 장군의 피부는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치유함을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엿새동안 한바퀴씩 돌다가, 일곱번째 되는 날 일곱 바퀴를 돌고나서 한마음 한목소리로 여리고성을 향해 크게 외쳤을 때 여리고성은 무너졌다. 엿새동안 한바퀴씩 돌 때, 혹은 일곱번째날 여섯 바퀴까지 돌았을 때에도, 혹시 기대했을지도 모를, 여리고성에 조그만 금이 가기 시작했다던지 하는 아무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여리고성은 강하고 튼튼하게 이스라엘 백성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모두 실행하고 났을 때에야 비로소 여리고성이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만약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몸을 한번씩 담글 때마다 1/7만큼씩 피부가 깨끗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을까? 만약 그랬다면 나아만 장군은 매번 요단강에 몸을 담글 때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흥도 나고 '진짜 되는구나!' 하며 일곱번 몸을 담그는 그 과정 중에서도 쾌감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엿새동안, 아니면 일곱번째날 여섯바퀴 돌때까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시지 않으셨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진짜 되는구나"하면서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온힘을 다해 서로 기뻐하며 여리고성을 돌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방법은 tipping point를 기준으로 명확히 그 전과 후가 구분되어지는 것이었다. 물은 섭씨 99도까지 점점 뜨거워지긴 하지만 절대 끓지는 않듯이, 하나님께선 나아만 장군으로 하여금 마지막 일곱번째까지 말씀에 의지하여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그 행위를 끝까지 하길 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일곱번째 날 일곱바퀴를 돌고 크게 외치는 행위를 끝까지 하길 원하셨다. 그래야 비로소 섭씨 100도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들을 온힘을 다해 노력해 보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런 노력과 성의를 보고 가장 성실한 자에게 상을 주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벌을 주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담그는 것, 여리고성을 칠일 동안 돌고 크게 외치는 것, 모두 어려운 게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어려운 것이기도 한 이유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그 일을 행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눈으로 아무런 점진적인 변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포기하는 거다. 어려워서 못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위배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너무나도 확실하게 안 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미리 그만 두는 거다. 물이 섭씨 99도까지 끓지 않는다고 해서 가스레인지의 불을 그냥 꺼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 주위엔 섭씨 99도까지 기다리다가 불을 꺼버리는 사람도 있을테고, 섭씨 7~80도밖에 안되었는데도 미리 꺼버리는 사람도 있을테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방식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은 그런 '어이가 없어 보이는' 일을 하게 하시면서, 게다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되어지고 있는 것 같은 조짐도 느낄 수 없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도대체 뭘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믿음'이다.
만약 도중에 점진적인 변화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인간들은 그 눈에 보이는 점진적인 변화 때문에 처음에 받았던 지침 (말씀)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잊어버리게 되고, 점점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에 옮기는 게 아니라 되어져가는 중간 결과들을 보고 그것에 의지하여 행동에 옮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객관적인 중간 결과물이 자신의 눈 앞에 보여진다면, 믿음이 없이도 누구나 그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믿음은 없는데 그 최종 결과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그 행위를 하려고 들 것이다. 그순간 이 행위 자체는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본질은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 믿음의 반응을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최종 결과물로 응답하신다는 건데, 위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더이상 그 사람들의 행위는 믿음의 반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런 눈에 보이는 중간 결과가 없더라도 다른 것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의지하여 끝까지 가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상황이 그 행위를 하는 동안 점진적인 눈에 보이는 변화를 전혀 보여주시지 않는 것이다. tipping point까지 묵묵히 가는 행위. 이건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지할 때도 불가능하다. 도중에 '과연 될까?'하는 조심스러운 질문을 마음 속으로 해도 상관없다. 말씀 의지하여 끝까지 가는 건 꼭 아무 의심이 없어야만 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하나님의 시간표는 오게 되어 있다.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 그 말씀대로 끝까지 그대로 순종하면 되는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응답이 지금 안 보여도 상관없다. 처음 받았던 그 말씀을 믿고 끝까지 가보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표현이다.
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 이제야 조금씩 감이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