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그러나 정확한
뻔한, 그러나 정확한
어젯밤 직장 동료와 함께 탑건 매버릭을 보며, 저렇게 뻔한 스토리로도 여전히 충분히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자극적인 소재로 사람들의 말초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이 아닌, 진부할 정도로 올드하고 고전적인 정공법이 여전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나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내가 현대 문학보다 고전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와도,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었다.
예측 가능한 뻔한 이야기 전개가 여전히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곧 그 서사 안에 깃든 묘사의 힘 때문일 것이다. 서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 간의 갈등과 위기,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회복되는 일련의 과정을 진정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공감 가능한 정도로 잘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이는 곧 배우의 연기력을 직결된다.
톰 크루즈는 그저 잘생긴 천재 파일럿에 머물지 않았다. 그가 가진 동료에 대한 진정성 어린 우정/사랑은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관객 중엔 아무도 매버릭이 무대 위에서 사라지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응원하고 그가 성공하길 바랐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작전 성공과 무사 귀환, 그리고 오래된 틀어진 관계의 회복에 나도 온 마음을 같이 했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엉덩이에 꽉 힘을 주고 관람을 해야 했고, 함께 비행하며 그가 죽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숙이 가지고 있을 그 무엇을 이 영화는 톰 크루즈라는 베테랑 배우를 통해 효과적으로 건드리고 또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 영화가 전편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늙어버린 톰 크루즈의 성숙미와 진정성이 농밀하게 잘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그가 출연한 어느 영화에서보다 톰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아름답게 빛났다.
톰 크루즈와 같은 소설을, 현대 문학에 속할 수밖에 없겠지만 고전 문학의 감성을 가진 장편소설을 나는 더욱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채워지지 않은 채 잠자고 있는 그 무엇을 정확하게 건드려 깨우고 싶다고 바라게 된다. 그나저나 조만간 시간 내서 탑건을 다시 보고 매버릭도 다시 봐야겠다. 왜 이렇게 멋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