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초고 ver 1.5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9. 20. 21:57

초고 ver 1.5

지난주 금요일, 출판사 대표님과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 후 한 달 만이었다. 보름 전에 보냈던 초고의 일부에 대한 피드백을 전달받기 위해서였다. 대표님은 이메일이나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이번에도 친히 대전까지 내려와 주셨다. 마음에 살짝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컸다. 누군가로부터 믿음을 얻는다는 건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만약 이번 글이 책으로 출간된다면, 내겐 세 번째 저서가 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저서를 감사하게도 같은 출판사에서 내주셨기 때문에, 이번이 출판사는 두 번째로 경험하는 셈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출판사마다 다른 비전이 있고 다른 스타일을 가진다. 초보 작가이자 무명작가인 나는 그저 배울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한 현장에서 십 년이 넘도록 성실히 그 자리를 지킨 모두에게 나는 경의를 표한다. 모두가 스승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나는 믿는다.

피드백은 크게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간결, 압축, 절제. 내 글엔 너무 친절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너무 불친절한 부분도 공존했다. 같은 말을 다른 표현을 빌려 반복하는 부분도 많았다.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어 독자의 개입을 미연에 방지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내는 부분도 있었다. 여러 번 읽고 괜찮다고 판단한 뒤에 보냈던 초고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내가 받은 피드백에 비추어 다시 글을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부끄러웠다.

다시 읽었다. 피드백 덕분에 장착한 새로운 렌즈 덕분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였다. 보이는 곳마다 수정을 가했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랬다. 그리고 오늘 그 결과를 ver 1.5라는 이름으로 다시 대표님께 보내드렸다.

같은 글을 계속 보게 되면 보이던 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처방책은 낯설게 읽기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동안 그 글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이번에 보낸 수정본에 대한 피드백이 오기 전까지 내 글을 읽지 않을 생각이다. 할 수만 있다면 잊어버려도 좋겠다. 두 번째 피드백이 올 때 즈음이면 아마도 나는 저자가 아닌 독자로서 내 글을 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객관적인 눈이 되어 다시 내 글에서 부족한 부분이 보이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고대한다.

페북이나 블로그에 쓰는 글과 책에 담길 글의 차이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도 나는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똑같이 글을 쓰고 있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세 번째 책을 쓰면 자신감이 더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다.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이 보인다. 성장 과정이라 믿는다.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글을 써나가는 작가로서의 끝나지 않을 여정.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