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루틴을 사랑하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9. 26. 12:38

루틴을 사랑하기

어딘가로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욕망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목적지에 가고 싶은 욕망, 또 하나는 출발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전자와 후자는 함께 하기도 하지만, 상호배타적일 때도 있다. ‘지금, 여기’도 좋지만, 더욱 풍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지금, 여기’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목적지가 어디인지 별 상관없이 떠나는 여행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장이든 도피든 상관없다. 두 가지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지금, 여기’에서의 결핍이 전제된 행동이다. 현재 주어진 환경에 모든 게 갖춰져 있다면 굳이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완벽한 곳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에게 여행은 언제나 요구되는 인생의 과정 중 하나다. 한 곳에 머무는 행위는 곧 ‘정체’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지금, 여기’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는지에 상관없이, 혹은 결핍의 정도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거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에게 여행을 떠나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

나 역시 종종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주로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에 진절머리가 날 때인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삶에 지쳐버려 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마다 나는 거기서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 혹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들이 여행 리스트에 오른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금세 그 욕망의 불꽃은 사라진다. 돈과 시간은 물론이며 무엇보다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주축은 일상이다. 나에게 여행을 가고 싶도록 부추기는 바로 그 삶의 현장이 내 삶의 주축인 것이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행복해야 할 시공간이 가장 혐오스러운 시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이 자체가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생각할 때, 이 비극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일상이 여행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살려고 무한히 애쓰는 것. 현미경으로 인생의 세세한 모습을 관찰하다가 때론 망원경으로 그 인생을 한 발자국 떨어져 관망하는 것. 때론 줌인으로, 또 때론 줌아웃으로 인생을 바라보며 관찰과 성찰의 삶을 사는 것.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서 나는 이렇게 렌즈를 조절하는 루틴이 점점 익숙해지고 좋아진다. 글쓰기가 이러한 루틴의 큰 도우미가 된다는 점은 꿀팁이다. 

루틴을 사랑하는 삶은 여백을 비추는 삶이다. 내 삶이 어두운 이유는 아주 가끔 무대 위로 올려지는 빛나는 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바탕이 되는 여백이 어둡기 때문이다. 여백을 밝히는 일. 곧 여백을 사랑하는 일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하는 일. 곧 루틴을 사랑하는 삶. 이는 동네 주변이 유명한 여행지가 되는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요즈음 주말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는 나에게 또 다른 일상으로 잦아든 루틴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뭘 더 바랄 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지금, 여기’가 좋다. 

어제는 아내의 셋째 이모님 환갑 잔치에 참여하고 오는 길에 서천 신성리 갈대밭 (아래 사진)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금강 하류에 자리잡은 갈대밭, 그리고 그 시간 그 공간에 함께 한 나의 사랑하는 가족.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금, 여기’. 더 알아채고 만끽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