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성품의 맥락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0. 9. 11:40

성품의 맥락

훌륭한 성품은 어디서나 유효할까. 성품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멍청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훌륭한 성품에도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맥락은 크게 보면 하나의 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성품이 훌륭하다는 사람은 우물과도 같은 어떤 특정한 시공간에서만 유효하다는 게 나의 관찰 결과이기도 하다. 즉, 그 우물을 나오게 되면 아무리 훌륭한 성품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성품이 훌륭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사람들을 살펴 보면 열의 일곱은 기득권에 속해 있었다. 물론 내가 충분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모집단의 사람들의 평균이 전체집단의 평균과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결론은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다. 그렇다. 경제적 여유가 훌륭한 성품을 만드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둘 사이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양의 상관관계는 내가 다녀본 한국 교회 내부에서는 공식처럼 항상 들어맞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즉 열의 셋은 어떨까. 내가 만나본 훌륭한 성품의 사람 중 열의 셋은 경제적 사정이 평균보다 못한 경우였다. 나는 이 관찰 결과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 반대의 관찰 결과 역시 앞 단락에서 내린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은 돈으로 갑질하는 세력에 저항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주위에 있는 작은 불빛의 존재를 믿으며 그들을 섬기면서 또 섬김 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누는 자들이었다.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하며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돈이 신이 된 세상에서 성품은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지 않나 싶다. 돈에 영향받지 않는 성품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게, 믿고 싶진 않지만, 사실인 것 같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나는 위에서 말한 두 부류 중에서 열의 일곱이 아닌 열의 셋이 되길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열의 일곱을 만날 때마다 괜히 빈정거리는 마음이 들지 않길 바란다. 나는 남아도는 걸 주는 사람이 아닌 남지 않아도 나누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