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예상 밖의 순간들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1. 11. 08:31

예상 밖의 순간들

실패와 같은 예상 밖의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풍성한 삶은 바닥이 나고 말 것이다. 풍성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은 그러므로 반드시 실패를 두 팔 벌려 환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흥미를 느끼고 새로운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를 얻으며 수정된 방법으로 다시 시도를 해보는 용기도 필요하겠다. 그렇게 할 때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고 과정의 일환이 되며, 마침내 얻은 성공 역시, 비록 드물게 찾아오긴 하지만, 하나의 과정으로 자리매김한다. 성공을 위해 나아가지만 성공만을 위해 나아가지 않는 사람이 된다. 모든 과정이 소중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린 마침내 성장하게 된다.

모든 게 과정이라 생각할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우열, 상하와 같은 위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 비교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거대담론의 올무에서 벗어나 비로소 작은 일상에 주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이 예상대로 진행되든 그렇지 않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두가 과정의 일환으로써 우리 삶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는 소중한 요소라는 점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관점의 전환, 재해석의 힘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 위에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아니 예상치도 못한 세상을 한 작가의 상상력 어린 시선을 통해, 그가 쓴 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맛보기 위해서다. 내 안엔 모든 게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길 원하는 모습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믿는 모습도 있다. 마흔을 넘기면서 후자의 내가 가진 믿음에 무게가 점점 더 실리는 듯하고 나는 이 현상을 사랑하게 된다. 심지어 나는 이런 생각도 서슴지 않고 한다. 계획대로 삶이 진행된다면 얼마나 그 삶은 단조롭고 재미가 없을까, 하고. 물론 여기엔 조건이 붙는다. 인생이 두 동강 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실패는 사양한다는 조건. 하기야 그런 건 모든 과정이 중단되는 파국을 야기하기에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테니, 그리 비겁한 말 같진 않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뿐만이 아니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르는 나라의 작가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같은 논리다. 내가 모르는 책이 많이 꽂힌 서가, 이를테면 도서관이라든지 큰 서점에 가끔씩 들러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거나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적 있지만 그걸로 끝이었던 미지의 작가와 미지의 작품을 시간을 진득하게 들여 들춰보는 습관을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나는 낯선 곳에 노출되는 경험이 위험할지라도 창조의 전신이라 믿는다. 또한 그것은 우리 삶을 새롭게 하고, 익숙한 일상을 소생시키는 기회가 된다고 믿는다. 창의성을 원하는 자에게 익숙해진다는 건 쥐약과도 같고, 새로움을 탐험한다는 건 산소와도 같다. 예상대로 일을 진행시켜 예상했던 결과를 얻어내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나는 점점 더 예상 밖의 상황을 맞이해도 큰 상처 없이 살아남고 오히려 의외의 열매를 맺는 경험을 더 소중하게 기억하게 되고 마음을 다해 더 사랑하게 된다. 예상 밖의 상황, 낯선 환경이 더 이상 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