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딤
견딘다는 건 무식한 사람들의 소관이라 여겨 왔고, 그래서 머리를 잘 써서 방법만 찾아 낸다면 그런 무식한 행동쯤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리고 참고 견디는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땐, 불쌍하다는 시선과 함께 왜 머리를 쓰지 않느냐는 조소를 보내왔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난 그렇게 힘들게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을 사실은 비웃고 무시해왔던 거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 왔다가 지나간다. 37년이 걸렸다. 나 역시 인생에 있어선 나그네와 같이 점점 흐려져가고 있는 한낯 눈에 보이는 한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은. 그와 함께 그동안 내가 확신에 차서 행했던 많은 행동들이 그저 철부지 어린애의 그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도. 머리를 잘 쓰면 약간의 어려움은 경감시킬 순 있겠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어려움이 닥쳐오는 것을 예상하거나, 또는 예상했다더라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인간의 삶이란 것을 받아들이게 된거다.
지금의 내 삶은 재밌게도 견딤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견딤보단 기다림이란 단어가 조금더 적합하긴 하겠지만, 기다림의 미분계수는 견딤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기다림이란 견딤의 연속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모자란 행동으로 여겨왔던 견딤을 이젠 덤덤하게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2015년도 벌써 한달이 지나간다. 올 한해를 인디애나에서 시작할 수 있어서 나름대론 깔끔한 면이 있어 좋긴 하지만, 맺고 끊는 게 깔끔해 질수록 그만큼 들어가는 노동의 양은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난 한달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한계를 맛보는 시간들이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만남만큼 가슴 설레게 하는 일도 없겠지만, 그런 것들도 그저 지나가는 한 점에 불과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바쁘고 지쳐서 솔직히 그런 것들을 만끽할 여유가 내겐 없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변화를 살펴 본다면, 한달만에 내 눈에 보이는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환경이 바뀌었다. 무엇 하나 여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이 많은 일들을 그래도 치뤄낸 거다.
때론 일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이 되어 일련의 사건 하나하나를 (그 사건들 하나하나도 결코 작지 않은 의미임에도) 곱씹을 수 없을 때가 있는가 하면, 어쩔 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의 진행이 더딜 때가 있다. 지난 한달은 물론 전자에 속하는 것이지만, 조금 더 큰 인생의 관점에서 볼 땐 여전히 후자에 속한다. 난 여전히 무언가를 (이제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의 확신도 갖지 않은 채) 위해서 준비되고 있는 기다림의 시간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단지 약간의 순간 기울기값이 증가한 시기라고나 할까.
눈이 된 비는 조금씩 짙어져 가고 있고, 아들 녀석의 기글대는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나는 이런 순간을 행복이라 감히 부른다. 견딤의 순간에도 행복은 충분히 누릴 수 있음을 가족은 나에게 오늘도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