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guised Curse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낙차는 커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멀리 갈수록 목표지까지의 거리는 물론이며 원점으로 돌아오는 길조차 멀어진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육적인 것만으로는 궁극적인 만족에 이를 수 없다.
마셔도 마셔도 타는 듯한 영적인 갈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그 영을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을 만날 때에만 채워질 수 있도록 애초부터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인간 삶의 driving force는 자신의 갈증을 해결하려는 욕구이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갈증의 실체가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알 수가 없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알기 위해 좀더 많이 좀더 열심히 지식을 습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윤리도덕적인 방법을 통해 나름대로의 관점을 세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의 그릇된 동기와 행동을 바로 잡아보고자 노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당장 눈 앞에 벌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대비하고자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막연히 무언가 눈에 안보이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 믿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도 한다. 이 모두가 표현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그 시작은 "갈증 해소"다.
이런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는 성공과 출세를 거머쥔 숱한 사람들이 있다.
안타까운 영적인 사실은, 차라리 성공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법한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그 대다수의 성공과 출세의 영적 좌표는 바로 낙차가 커질대로 커진 높은 곳임과 동시에, 원점에서조차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진 잘못된 방향의 먼 지점이기 때문이다.
육적으로는 blessing이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curse라고 판명될 수 밖에 없는 좌표에 그들은 서 있는 것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갈증을 머금은 채로. 그들이 이룩해낸 blessing은 결국 disguised curse임을 모른 채로.
차라리 그 좌표에 이르기 전에 고난을 당해 원점으로 올 수 있는 기회를 만났었더라면,
차라리 스스로의 삶을 제대로 드라이빙할 수 없을만큼 능력이 모자랐었더라면,
차라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배경이 없었더라면,
차라리 자신의 그릇됨을 성찰할 수 있는 바른 됨됨이의 인간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더라면...
Disguised blessing인 고난은 우리 인간들이 저절로 지향하는, disguised curse인, 잘못된 성공과 출세로 걸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하나님의 사랑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