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6장 13-20절]"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도 보이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음에도, 심지어 그것들을 직접 보고 들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저마다 각기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세례 요한으로, 엘리야로, 예레미야로, 선지자로.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예수님의 일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확대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모습도, 엘리야의 모습도, 예레미야의 모습도, 선지자의 모습도 갖고 계시지만, 결코 예수님은 세례 요한도, 엘리야도, 예레미야도, 선지자도 아니셨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세례요한은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치며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했던 사람이다. 크리스챤이라고 사회운동에 적극참여해서 사회의 구조와 제도를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엘리야는 능력을 상징한다. 갈멜산에서 아합왕과 그의 무리들이 섬기는 바알신과의 대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의 불을 구하고 받는 기적을 보였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참신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즉, 방언하고 예언하고 신유하는 등 신비주의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선지자다. 이 세상의 많은 부조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자 하는 박애주의를 대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 교회 안에도 이러한 여러 모습들이 있다. 저마다 한 쪽에 치우쳐서 자기들의 믿음과 행위가 가장 옳은 것이라 조심스럽게 드러내지 않고 주장하기도 한다. 크리스챤이라면 사회운동에 관심이 가져지는게 당연하고, 크리스챤이라면 신비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관심을 가지는게 당연하며, 크리스챤이라면 세상에 수많은 아픔을 함께 공유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게 당연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충분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돈많은 통일교 신자, 불교신자, 양심있고 돈있는 불신자들도 이러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오히려 크리스챤 커뮤니티보다 더 영향력있게 가담하고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운동, 신비운동, 박애운동에 무관심한 크리스챤에게 도전을 주며 각성케할 수는 있을진 몰라도, 한 쪽으로 치우쳐 다른 쪽을 무시하거나 정죄하게 된다면 (이렇게 치우친 사람은 자신이 치우친지도 모른체 그 길만이 복음을 실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고 있으리라), 그것은 더이상 순수한 복음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들어간 때묻은 복음이 되고 만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명확히 알기를 원하셨다. 그래야 명확한 복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다.
그리스도란 헬라어로써 히브리어인 메시야와 같은 의미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다. 구약 시대에는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선지자, 제사장, 왕 직분을 세웠다. 즉,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세가지 직분을 모두 감당하러 오신 것이다.
(1) 예수님은 참선지자로서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신 분이시며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2) 참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의 원죄를 단번에 해결하신 유일한 분이시며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장 1-2절]"),
(3) 참왕으로서 사단의 세력을 이기신 유일하신 분이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장 8절]").
그런데 이 세가지 직분은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었던 사건 이후에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세가지 영적인 문제의 답이다. 그 세가지 문제는 바로 하나님 떠난 문제, 죄에 빠진 문제, 사단의 손에 잡힌 문제이다. 즉, 하나님 떠난 문제는 참선지자 되신 예수님께서 유일하신 길이 되시면서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심으로 해결해 주셨고, 죄에 빠진 문제는 참제사장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직접 짓지도 않은 원죄 문제 때문에 죽었던 영이 살아나게 해주심으로 해결해 주셨고, 사단의 손에 잡힌 문제는 참왕되신 여자의 후손, 예수님께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날 수 있게 해주심으로 해결해 주셨다.
요한복음에서도 사도 요한은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장 31절]"
예수를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믿음이야말로 생명을 얻는 믿음이며,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시작점에 설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과거의 체질과 뒤늦게 깨달은 죄성으로 인한 감정적인 죄책감이나 능력 없는 자신의 열등감이 결부된 때묻은 믿음과 그에 따른 열심있는 실천 위가 아닌, 올바른 믿음의 고백의 반석 위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