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진지함을 초월한 유머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8. 3. 22:22

진지함을 초월한 유머

가끔은 뭔가 놓치고 있다거나 뒤쳐지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마흔이 넘어 뒤늦게 자랑할 만한 것들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이 얼마나 단맛을 내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만든 행복의 통로가 내 인생 여정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감사해하면서도, 문득, 정말 문득, 왜 내 인생은 영화 속 빛나는 한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들면 나는 몹시 당황하게 된다. 어딘가에 마음을 둘 수 있고, 내가 함께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웃고 울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읽기와 쓰기를 즐기며 내 작은 삶의 단면을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생겨난,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마저도 그럴 때면 잠시 흔들린다. 불안은 도둑처럼 찾아와 내 심령을 정복하고 나는 그것의 노예가 되어 예전의 나로 돌아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땔감으로 사용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잠시 억눌리기도 한다. 소소함이 하찮음으로, 성실한 지속이 의미 없는 반복으로, 무탈함이 무미건조함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그 순간은 가히 공포라 할 만할 것이다. 

송곳처럼 내 못된 자아가, 내 이기적인 자아가, 내 비뚤어진 자아가 내 안에서 나를 뚫고 나오는 그 순간을, 그러나, 이제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강해진다는 건 어쩌면 이런 갑작스러운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불청객을 맞이하면서도 울거나 떨지 않고 오히려 환대하고 웃으면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닐까. 내게 큰 의미였던 불청객들은 스스로 내게 미칠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점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내게 필요한 건 진지함이 아니라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유머일지도 모르겠다. 진지함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유머가 아닌, 진지함을 초월한 유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