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매임이 주는 자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2. 25. 20:12

매임이 주는 자유

적어도 한 시간 매일 운동하려고 애쓴다. 일주일에 서너 번 매일 오후 5-6시에 동료와 탁구를 친 지도 벌써 2년 째다. 탁구 치러 직장에 가는 건 아니지만, 나의 직장에서의 일과는 이 시간을 향해 달라간다고 해도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일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늘 이 시간만큼은 사수하려고 애쓴다. 일이 많을 때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먼저 끝내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늘도 나는 아침 7시 반에 출근해서 일을 마쳤다. 아무도 없는 직장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데에는 느껴본 자만이 아는 은밀한 쾌감이 있다.

탁구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탁구가 일보다 중요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물론이다. 탁구는 탁구일 뿐이다. 탁구 안 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도 내가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의 하루 중 탁구 시간은 일상의 루틴을 이루는 중추로 작동한다.

누군가에겐 헬스장에 가거나 달리러 가거나 산책 나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혼자 스낵을 먹거나 바둑을 둔다거나 책을 읽는 시간일 수도 있다. 뭐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과가 그것 때문에 원활하게 돌아가고 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속할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말이다. 현재 나에겐 그것이 탁구 시간인 것이다. 만약 탁구를 못 치게 된다면 나는 다른 것으로 이러한 루틴을 지켜내는 시스템의 코어를 마련할 것이다.

누군가가 시킨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규칙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건 자발적이다. 그리고 어떤 규칙을 부여하여 매일의 일과를 어느 한 점에서 모이게 한다는 건 매이는 행위이다. 자발적인 매임. 나는 이 작은 실천이 나의 삶에 큰 안정감과 자신감을 허락하고, 나아가 자유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매임이 주는 자유라고 하면 형용모순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을 알면 알수록, 나를 더 알면 알수록 인간은 자유만 주어지면 백 퍼센트 방종에 치닫는 존재자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유를 누릴 때 행복도 만족도 느끼지만, 그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어떤 작은 매임이 있어야 비로소 현실 가능해지지 않나 싶다.

나는 매임이 주는 자유를 누리며 감사해한다. 무언가에 매일 수 있어서 감사한다. 방종으로 치달을 수 있는 나를 잡아주는 이 매임을 거룩하다고 하면 너무 많이 나간 걸까.

일상의 작은 규칙, 그 규칙을 지키고 사수하려 하는 자발적인 매임. 나의 작은 삶은 이 매임으로 깊고 풍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