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능성과 개성화
대체불가능성과 개성화
학창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종종 듣던 덕담 중 학생들에게 꽤 효과가 있었던 말 중 하나는 꼭 필요한 사람, 아니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즉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그래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처럼 성공지향적이었던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학생일 때 내게 그 덕담을 해주셨던 선생님들과 이제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많아진 지금, 나는 그 대체불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되었다. 물론 현실에선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존재하긴 하는 것 같다. 아주 극소수로 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불멸이 아니기에 언젠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었던 그곳은 새로운 사람과 함께 다른 방식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이 대체불가능한 존재라고 여겼던 건 근시안적인 일종의 신념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기적인 천재라고 불리는 아인슈타인 급 정도가 아니라면, 글쎄다. 거의 모든 사람은 대체가능한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게다가 내가 알기론 아인슈타인은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그저 타고난 끼(천재성)를 발휘하기 위해 가정도 내팽개치고 물리학 연구만 집중했던, 다시 말해 한 가지만 했고 그것밖에 할 줄 몰랐던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아인슈타인처럼 되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보는 게 아인슈타인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 생각한다.
선생님들이 말씀해 주셨던 대체불가능성은 사회적 성공 및 출세의 다른 말일뿐이었고, 그 말을 달리 하면 ‘갑’의 위치에, 그것도 ‘슈퍼갑’의 위치에 올라 독재하듯 군림하는 절대권력을 쟁취하라는 말이지 않았을까 싶다. 돈 많이 벌고 유명해져서 떵떵 거리며 살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런 덕담은 학생들 하나하나를 생각하면서 그 학생에게 맞는 메시지가 아니라 선생님의 열등감 내지는 이루지 못한 꿈같은 것을 뭇 학생들에게 투사한 결과이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모방 욕망의 열매일 뿐이라고 충분히 해석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라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대신 고유한 개성을 살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줄 것이고, 실제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오고 있다. 선생님이라면, 혹은 부모라면 아이들 각각이 가진 정체성과 탤런트를 스스로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기 전의 아이들은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지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개성화가 무참히 짓밟힌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꼰대이기 때문일까. 그렇게 나를 본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남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여 살아가는 아이들, 자기의 고유한 생각 없이 대세에 편승하는 것이 잘 사는 거라고 암묵적인 학습을 받는 이 사회를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반지성적인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튀어나오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열매일지도 모른다. 이런 근원적인 것들이 지속되면 비상식적인 사회현상들은 앞으로도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성찰 없고 반성할 줄 모르는, 생각 없는 인간들의 양산이 대체불가능성을 떠들었던 시대가 남긴 유산이란 말인가.
개인적으로 인터넷과 동영상과 스마트폰의 발달 및 보급이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개성 없이 남들의 눈치나 보며 살아가는, 정의나 도덕 같은 건 안중에 없고 그저 살아남고 이기면 그것이 정의이고 법이라고 믿는 사람들. 한때 대체불가능성을 교육받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이다.
대체불가능성이 아닌 고유한 개성화를 말해주자. 교육환경도 승자독식 혹은 약육강식 구조 저변에 깔린 타자를 짓밟고 승리하는 목적이 아닌 스스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개성을 가지고 있는지 탐구하게 만들고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목적으로 만들자. 어느 자리에 가도 대체된다는 것을 미리 말해주자. 다만, 대체되어도 그 자리에 있을 땐 고유한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자. Doing은 대체되어도 Being은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자. 사회적 기능으로만 사람을 정의하지 말자.
참고로, 공장부속품 중엔 대체불가능한 건 없고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체불가능한 공장부속품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