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겸손함의 미덕 뒤에 숨은 비겁한 기회주의자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 25. 02:38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길 좋아한다는 것은 중립적인 의미다. 어쩌면 말하고 쓰는 것보다 듣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겸손함의 미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중립적인 행위는 현실에서 중립적인 열매를 맺지 못할 때가 많다. 듣거나 읽는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늘 비판만 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위에 적힌 겸손함의 미덕을 갖춘 듯 하지만, 그 미덕 뒤에 숨어 버린 비겁함이 내 눈엔 보인다.


듣고 읽는 것이 중립적이라면, 말하고 쓰는 것도 중립적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중립적이다. 물론 표현되어 버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은 다른 사람의 그것들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 논쟁 자체도 중립적이어야 한다. 중립적인 쓰는 행위와 중립적인 읽는 행위, 중립적인 말하는 행위와 중립적인 듣는 행위가 만났기 때문에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파생되는 논쟁도 중립적이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다. 그러한 중립적인 행위를 하는 주체가 중립적이지 않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논쟁이 저급한 속어가 등장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깎는 듯한 언사까지 등장하며 개판으로 치닫게 되는 이유는 논쟁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논쟁을 행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인 것이다.


겸손함의 미덕이란 그럴듯한 간판 뒤에 숨은 허다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눈에는 겸손함이 없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익명성은 그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안전망이다) 그들 눈에 숨은 비겁함은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그들은 다수를 이루고 군중을 이루며 여론을 형성하는 주체다.


발언하지 않거나 기권하는 사람들. 난 이런 겸손한(?) 사람들에게 겸손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겸손함의 미덕 뒤에 비겁하게 숨어서 기회주의자라는 본 타이틀을 손에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반대 의견을 확실히 표현하는 사람들보다 말 없이 웃고 있는 그들이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