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aith

선택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 25. 02:41

탐험가들이 동굴 속에 갇혔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물에 잠긴 좁은 통로가 보인다. 그 통로 끝으로 빛이 보인다. 물 밖으로 나가서 통로를 지난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람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를 먼저 보낸다.


이 때, 한 사람 선택의 요점은 그 사람만 구조받도록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구조를 위함이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을 선택함은 나머지를 거부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 모두를 위한 선택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한 민족,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만을 구원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창세기 12:1-3에 명시되어 있듯이,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고 부르신 것은 모든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도구로 쓰시기 위함이다. 창세기 12장에 선포된 하나님의 원대한 약속과 계획은, 처음에는 한 사람, 아브람과 연관되어 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창세기 11장까지 제기된 우주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한 나라가 선택 받지만, 모든 열방이 그 선택의 수혜자가 된다. 이는 참 이스라엘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결국 그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가 한 사람,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 대표될 것이며, 그분을 통해 모든 열방에 하나님의 구속적 복이 임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로 인하여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후손과 열방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바울은 이 점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를 그리스도이자 구세주로믿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씨에 포함되며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상속자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열방의 아버지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 –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다국적 공동체 – 는 아브라함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선택받고 부름받은 백성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결론이 뒤따른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을 확산시키는 사명을 받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이 된 우리 기독교인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복이 되라는 부름을 받는다. 아브라함의 복은 자기복제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복을 매우 완전하게 선교적으로 만드는 특징이다. “복이 되라’는 아브라함의 약속은 곧 우리의 약속이 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저, ‘하나님 백성의 선교’ 중 4장 ‘열방에 복이 되는 백성’ 에서 부분 발췌 및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