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허세, 무모함, 그리고 믿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4. 25. 18:29

허세, 무모함, 그리고 믿음

때론 허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모함도 마찬가지다. 무풍지대와 같은 단조로운 삶에 신선한 바람을 주입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세만 부린다거나 무모하기만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인간이라는 독특한 종의 다채로운 캐릭터를 감안한다면 이 둘은 다양성의 한 조각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되곤 한다.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버렸을 때의 그 황당한 거짓말은 종종 내 안에 숨어있던 나를 일깨워 실제로 그 일을 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세는 무모함과 찰떡궁합이다. 돈키호테적인 이런 특징은 대부분 실패를 가져다주는 게 현실이지만, 때론 그 실패가 성공으로 이끄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다고만은 할 수 없다.

누누이 인간은 평상시 이성적으로 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관성에 의해서 습관을 좇아 사는 게 인간의 일상적 모습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허세와 무모함으로 뭉친 순간의 인간은 어떤가? 이성인가, 관성인가?

둘 다 아니라는 게 나의 대답이다. 이성도 관성도 아니면서 그 둘 사이를 뚫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지극히 특별한 순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도 내 대답이다.

어쩌면 허세와 무모함은 예언자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현재 내 모습, 대부분은 세상의 평가에 의해 점철된 정적인 모습을 전제로 하지 않고, 변화되어 갈, 혹은 변화될 수 있을 동적인 모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원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추구하는 이들은 다들 이런 모습을 띠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허세와 무모함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데이터의 시선으로 정의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변화의 시작은 그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는 오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어쩌면 믿음이라는 것 역시 이럴 때 간절하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의 믿음은 색을 잃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