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무채색의 일상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6. 18. 18:30

무채색의 일상

일상다운 일상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어떤 색을 띨까?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다가 무심코 이런 질문이 들었고,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무채색"이라는 답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아내와 나누던 일상적인 대화를 떠올리는 이소베의 모습 때문인 듯싶었다.  

민음사 번역본 235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예 떠올릴 일이 없었던 흔해 빠진 부부의 대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장면. 그런 장면이 먼 나라에 와서, 오후의 호텔 방에서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아프도록 가슴을 조이며 되살아나는 걸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장면들. 나는 이 문구를 '무채색'으로 읽었던 것이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의 흔해 빠진 순간들을 남의 일 쳐다보듯 무관심하게 허투루 흘려보낸 나의 무성의함과 애정 없음을 후회한다. 왜 나는 그 순간들에 빠져들지 못했던가. 왜 나는 그 시간 그 공간을 맘껏 누리지 못했던가.  

무채색의 일상은 가장 일상다운 일상이다. 일상의 몸통에 해당된다. 가장 거대한 무게를 지니는 시공간인 것이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소중한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무채색의 일상의 무게를 경히 여기지 않기로 한다. 거기에 물감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어떤 강렬한 색을 찾아 떠나는 무모함이 아닌 이미 내게 와 있는 무채색의 일상에 색을 입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