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Pilgrim's Journey. Day 1. 영적인 존재.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 31. 03:37

아프리카 오지에서 한 부족이 발견됐다. 문명과 전혀 접촉이 없었던 것 같았다. 몸에 걸치고 있던 가죽 조각이나 동물 뼈 조각으로 치장한 그들의 모습으로 그들의 생활 방식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려 했었지만, 다행히 그들의 말을 잘 따르고 우리에게 아무런 무기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집중 감시 대상 정도로 우리를 다루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아이와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유도 아마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밤이 됐다. 문명과 교류가 전혀 없었던 그들에게도 대장 (부족장)은 존재했다. 모두가 그 부족장의 말에 순종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뭐라뭐라 지속해서 말을 걸어왔지만,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통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 그 부족장 역시 우리들을 무법자나 침입자로 판단하진 않는 것 같았다.


갑자기 부족장은 일어나 부족들에게 큰 소리로 뭔가 명령을 하는 듯 했다. 그들은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는데, 굉장히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그곳의 대기 자체가 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준비했던 건 종교 의식 같았다. 우리가 갇혀 있던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그들이 숭배하는 그 뭔가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었지만, 그들 중 몇몇이 얼굴과 몸에 짙은 치장을 하고 몸 전체를 가리는 옷을 걸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뭔가 특별한 의식을 준비하는 건 분명했다. 두려웠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산 제물로 우리들이 쓰여지는 건 아닐까 해서였다.


(물론 우린 제물로 희생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주위가 조용해 지더니 덩치가 큰 두 남자들이 와서 우리를 밖으로 인도했다. 부족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앞 쪽에는 소처럼 생긴 커다란 동물이 얌전히 서 있었다. 부족장이 뭐라고 몇 마디 하더니, 그 앞에 있던 치장한 몇몇이 소를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해부에 능숙한 의사처럼 그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내장들도 정리를 했다. 놀라운 건 피가 난자할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피는 피대로 어떤 접시처럼 생긴 커다란 곳에 모았고, 각 장기들도 가지런히 제단 같은 곳에 올려졌다. 천만다행이었다. 소처럼 생긴 저 동물이 우리들을 대신해서 죽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문명이 일절 차단되어 아무런 교육이나 타 문화의 발달을 경험할 수 없었음에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우두머리가 존재했고, 신을 숭배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문제에 한해서는 그들이 세운 부족장의 지혜와 명령을 따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이 숭배하는 어떤 신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정리가 되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그래서 뭔가를 섬기고 숭배해야 하는 본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난 몸으로 실감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다. 인간이 철학과 신학, 과학과 의학을 발달시킨 이유 역시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이유에서 기인한다. 생각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연결시킨 시도는 탁월했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에 미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생각하는 것 또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놓쳤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의 두려움이 있고, 그 뒤에는 인간의 죄가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개념은 이를 너무나 잘 설명해 준다. 심리학자나 철학자들, 그리고 종교인들은 정욕을 인간 세상의 문제들의 뿌리라고 진단하지만, 그 정욕조차도 죄의 개념을 삽입시키면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물론 죄가 진짜 뿌리라면 정욕은 굵은 줄기 정도가 될 테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시작이다.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를 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인간은 짐승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차이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뭔가를 숭배하는 본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