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관계
성막의 휘장만 찢어진 게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하신 곳은 십자가였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수직적인 상하뿐 아니라 수평적인 좌우가 만나는 (cross) 상징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화목의 다리로써, 죄악으로 갈라졌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도 허무셨다고 난 믿는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상하좌우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써 악은 심판받았고 하나님나라가 임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약속이 성취되었다. 나라와 인종과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열방이 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이 열렸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자 핵심이고, 이것이 바울이 전했고 또 우리가 전해야할 '십자가의 도'일 것이다.
난 현재 미국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산다. 한국에서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삶이다. 다양한 인종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언어, 또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종교를 우리 한인들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아직도 낯선 땅에서 매일 맛본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의 담은 말할 것도 없다. 더 안타까운 건 미국 내에서 교회의 존재 방식이다. 한인은 한인끼리,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따로 모여 각각 교회를 세우고, 모든 관계를 화목하게 하신 하나이신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 얼마나 복음의 정수인 하나님나라의 이미지와 동떨어져 보이는 모순인가.
하나됨. 하나님나라는 획일적이진 않지만 하나된 공동체다. 그리고 그 하나됨을 구성하는 건 다양성이다. 거기에는 인종도 문화도 언어도 초월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중심에 있다. 복음이 하나됨을 만든다. 복음을 누리며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조차, 그것도 미국이란 완벽한 다양성의 현장에서도 스스로 외딴 섬을 만들어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살아간다는 건,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기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첨부터 계획하진 않았겠지만 인간의 안락함의 추구와, 선민사상의 잘못된 우월의식과, 큰 하나님나라 공동체라는 개념없이 추구한 개인주의적인 영성의 결과가 역사적으로 낳은 건 바로 하나됨이 아닌 분리됨이었다. 그리고 그 분리에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기정사실화되어 있고 그 안에서 태어나서 자란 95퍼센트의 2세들은 두 문화와의 간극을 뛰어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다녔던 교회를 떠난다고 하는 이 시대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비그리스도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삶의 현장에서 모든 차별을 초월하며 저항하는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한다고 외치면서도, 그리스도인끼리 모인 곳에서조차 세상이 갈라놓은 차이점을 그대로 들고와 적용시키고 또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얻으려 하는 모습들이 난 오늘따라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진다. 역시 난 미국에 충분히 살지 않은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