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의의 화신, 과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04

우리 주변에는 정의감에 불타는 '의의 화신'들이 많다 (주로 엘리트 계층에 몰려있다). 처음에는 이들이 옳아 보이고 이들의 정의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비판의식에 투철한 이들에게는 영혼의 메마름과 내적 분노 그리고 관계의 단절이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알고 보면 이들은 외롭다. 그런데 더 알고 보면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는 걸 나중에 그들 스스로도 알게 되곤 한다. 그들이 자초한 그 외로움 덕분에 어쩌면 그들은 성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니컬함이 성령의 열매나 은사 가운데 있진 않지만, 그곳으로 이끌어주는 하나의 길로 이들에겐 작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제나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마치 혼자 먼저 발견한 것처럼, 마치 혼자 의인인 듯, 겸손의 허우대만 갖추고 행동한다. 이런 이들은 기독신자 중에도 많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들의 믿음' 이면에는 '자칭 복음적인 자신들의 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숨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누가 봐도 좋아보이고 심지어는 거룩하게 보이기까지 해도,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들은 자신들이 나름대로 정의한 기독교의 모습을 언젠가부터는 참 기독교의 모습이라 믿어오고 있는 오류를 범해 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독교는 이래야지...", "어떻게 예수 믿는 자들이 이래?", 등등의 판단을 스스로 하고, 또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것이 자기들만 깨달은 숨겨진 진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알고 보면 그저 시작만 그럴듯하고 마무리가 없는 (결국 뚜껑 열어보면, 자기네 뜻을 받아들여 달라고 인정해 달라고 떼 쓰는) 한편의 rebuttal letter같은 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나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들과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under construction에 속해 있다. 판단하는 자나 판단하는 자를 판단하는 자나 오십보 백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이런 끝도 없는 반복을 하며 점점 깨어져 간다. 나도 결국 평범했었고 평범하다는 걸 깊은 곳에서부터 고백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