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디트리히 본회퍼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05

시대가 바뀌어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문제의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그 인간 문제의 해답인 진리 역시 변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진리의 편엔 늘 남은자로서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비겁하지 않은 독일의 천재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 역시 난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과 더불어 특이한 모습으로 토착화된 대한민국 기독교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이 시점에 디트리히 본회퍼를 읽는 것은 의미있는 독서가 아닐 수 없다. 내면에 깊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정경유착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양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메인 스트림(? 슬프다)에 속한 대부분의 대형교회 목사님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경시하면서도 유명인사들과의 친분을 통한 돈과 명예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가장 소중하게 돌보며 위세 떠는 목회자들에게도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으면 좋겠다.


아래엔 “젊은이를 위한 디트리히 본회퍼” (울리케 벨커 저, 새물결플러스 출판)을 읽고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본다.


1. 교회는 세상에 편승해 동요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책임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디트리히는 세상과 신앙의 세계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세상이 쓸모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과 책임 있게 사는 것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2. 디트리히는 국가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 교회는 정치에 개입해야만 한다고 외쳤다. 교회는 정치적 희생자들을 지원해야 하고, 정치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술 취한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받혀 죽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보다 차라리 차 자체를 멈추게 해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일 목사들에게 교회가 정치에 개입한다는 논리는 너무 생소했다. 그들은 교회가 국가의 정치적인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점점 더 많은 교인들과 목사들이 자신을 “독일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히틀러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다. 교회를 위해 “아리안 조항”도 자발적으로 수용했다. 이 국가 법령은,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적합한 인종은 북방 게르만족에 속하는 아리안족뿐이며, 그들만 공직에 진출할 수 있음을 뜻했다. 예컨대 유대인 조상을 가진 목사는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었다.


3. 디트리히에게는 정치적인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수도사적인 은둔이 아니라, 공적인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디트리히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가 잘못된 가르침을 유표한다고 비난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카톨릭주의에 경도되었거나 “수도생활”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구약의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한다고 분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디트리히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항상 반복하여 질문했던 것은 바로 “무엇이 참된 교회인가?”였다.


4. 미국에 머물던 디트리히는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조짐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그는 거기서 안전을 보장받았어야 했을까? 전쟁이 임박하다는 암호를 받았을 때,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배편으로 유럽에 돌아왔다. 그는 독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도인의 삶이 독일에서 다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만일 고통의 시간을 내 동포와 함께 견뎌내지 않는다면, 나는 독일 그리스도교의 재건에 참여할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해 9월 1일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45년 4월, 히틀러가 자살하기 3주 전 디트리히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5. 디트리히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교적 가치가 모두 경시되고 짓밟히는 것을 방관한다면, 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국가가 권력을 남용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살해한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국가에 저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