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지 않는 비겁함에 대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과 "중용"이란 말은 좋게 들리고 실제로 좋은 뜻이다. 그러나 "차지도 덥지도 않다"는 말은 좋게 들리지 않는다. 세 가지 말 모두가 극단적이지 않고 균형을 이룬 어떤 적정선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화자의 강조점에 따라 거의 반대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진지한 얘기에는 반응하지 않고 말 없이 가만히 웃고 있다가, 중간중간 주제를 전개하기 위한 농담이나 예시에서만 남들보다 더 호들갑을 떨면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그 대화가 논쟁이거나 찬반토론이다 하더라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 자기 의견을 먼저 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마치 다수결에 떠밀려서 마지못해 선택하는 것처럼 역시나 호들갑을 떨면서 막판에 의견을 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건 따로 있는데 마치 양보라고 하는 것처럼 희생이라도 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깔깔대면서 분위기를 희화화시킨다.
그들의 과장된 웃음은 위장이다. 마치 그 대화나 모임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듯하나 실제론 오히려 방해가 되든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분위기가 그들에 의해 띄워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모임의 목적이나 결과까지 흐지부지되는 건 나로선 참을 수 없다.
의견을 물어보면 "아무거나"라든지, "상관없어" 식의 대답을 한다. 도대체 생각이나 있는건지, 뭣하러 모임에 나와 앉아 있는건지 의심까지 간다. 도대체 생각을 알 수가 없다. 마치 인생을 초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초월이란 말은 그 딴데 사용하기엔 너무도 값어치 없게 느껴진다.
이 인간들아. 차라리 찬성이나 반대를 하든지, 이게 좋다거나 저게 좋다고 말 좀 해라. 그렇게 고상한 척,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 받아들일 것처럼 위장하지 말고 말이다. 그리도 빠져나갈 탈출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단 말이냐!
웃긴 건, 그들은 팔짱 끼고 있다가 일이 예상처럼 잘 진행되지 않으면 꼭 한 마디씩 한다는 것이다. "내가 뭐랬어?" 라든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고 불평을 해대며, 책임을 묻게 될 경우에는 자기는 그걸 동조한 적이 없다며 발뺌을 한다. 비겁한 초월자에다 비겁한 예언자다. 으, 이 역겨운 회색분자들!
그들의 행동 양식은 알고 보면 "책임 회피"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선호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주길 바란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았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행동 패턴을 고수한다. 왠만해선 사람들이 자기를 콕 찍어서 왜 그랬냐고 따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대부분은 그냥 의견 없음으로 묻어간다는 경험적 지식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찌보면 거머리나 기생충과도 같다. 조직에 딱 붙어서 이로운 건 다 빨아먹으면서, 조직이 나빠지면 자신은 그 결과를 일으켰던 원인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난 이런 이들을 과감하게 "비겁하다"고 하고 싶다. 이런 비겁한 작자들과 함께 일한다는 건 정말정말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