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게 해달라고, 나는 자주, 그것도 아주 간절히 기도했었다. 나는 그것이 "성공자의 기도"라고 여겼었다. 남들과는 사뭇 다른 기도 제목에 나는 은근히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믿던 하나님이란 존재 앞에서도 난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 "확실했던 기도"가, 가치관이 많이 바뀌면서 "아무런 근거없는 자기기만"으로 판정나는데, 나에겐 무려 40년 가까이의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하고 지식을 종합해 보기 전에 먼저 내 삶을 조금 떨어져서 관찰해본다. 한 인간에게 있어 4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게 아니다. 과연 기도라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 난 그것을 어떻게 겪어왔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내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나서 그것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버전을 살펴본다.
역시 과거 일요일날 교회에 앉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력되던 기도에 대한 공과공부 내용이나 목사님 설교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심지어 기도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과 답을 하는 소그룹 모임에서 회자되었던 것들하고도 다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해왔던 기도라는 것이 전혀 엉뚱한 짓거리로 결론이 날까봐 더럭 겁이 나기도 난다.
어릴적부터 보고 배운 기도에 대한 많은 지식이 내 안에 각인이 되어서 그것이 나를 옭아매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 각인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됐다는 허무함도 느낀다. 만약 어릴적부터 기도의 의미를 바르게 (솔직히 바르다는 말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지만) 이해했다면 어땠을까? 인생을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까? 아님, 어린 나이로 그것을 이해하기엔 역시 역부족이었을까? 결국 결과가 같아 버리진 않을까?
인간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 자체가 신비로움이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의 행동이 수정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기적일 것이다. 어떤 커다란 사건을 만나고 그 여파로 인해 그런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과정도 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도는 기독교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뀌고, 그 바뀐 생각 때문에 행동이 바뀌고, 결국 삶이 바뀌는 것, 이 과정이 일반적인 기도라고 한다면, 하나님나라 관점으로 생각이 바뀌는 것, 즉 삶의 가치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는 것, 이것은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피조물인 인간이 그 성령의 인도와 역사를 따라가며 경험하는, 그러면서 하나님과 함께함을 누리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가 아닐까한다. 그리고 그 시작과 과정과 끝은 내가 원하는 소원을 성취하거나 당면하거나 당면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기반한 순종이라는 열매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삶을 조명해 볼 때, 점점 내가 그려왔던 꿈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게 되는 반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갈수록 깊어가고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가짐이 되어 간다는 것은 적어도 내 삶이 기도의 여정 속에 있음을 증거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