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Underestimated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42

2009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내가 저평가된 인재라는 것이다. 나의 잠재력을 인정해 주면서도 내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여 선택한 사려 깊은 워딩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참 고맙다. 오늘 10년 만에 만난 영민이도 그랬다.


10년 전 포항에 있을 때였다. 대학원생이었던 그 시절. 실험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난 배드민턴을 치며 날려버리곤 했다. 아무리 하이클리어를 세게 쳐도 절대 닿을 수 없었던 체육관 천장은 어쩌면 그 당시 내가 꿈꾸던 과학자의 모습의 실체를 벌써부터 내게 말해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불의와 부조리를 참아냈고, 한 사람의 무지에서 비롯된 야망과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저평가된 결과를 나의 6년 박사과정의 최종 결과물로 받아들여야 했다. 실험실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마도 그 시절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배드민턴은 그 견딤으로부터 오는 끊임없는 압박감에 내가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준 아주 고마운 친구였다. 영민이를 오랜만에 만나니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함께 땀을 흘리며 우린 많은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도 지금은 아름답기만 하다. 10년이란 세월은 치명적이었던 독소까지도 추억의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왕년에..." 하면서 과거에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겁하게 보였고, 현실 도피적으로 보였으며, 꼰대스러워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조차 많은 합리화가 필요했다.


나는 그저 그 상황들을 이해하고 싶었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잡고 싶었다. 내가 옳다는 걸 상대방이 할 말 없게 완벽하게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것으로 그 당시 현재의 내 모습만이 아닌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까지도 뭉뚱그려서 옳은 것임을 단박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같다. 꼰대가 되기 싫어서 선택한 길에서조차 결국은 꼰대짓을 할 수 밖에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치를 떨며 나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에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남아서 고개를 쳐들고 있던 오기와 교만함은 내 혈기를 모두 동원하여 다시금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를 채찍질했었다.


영민이의 사려 깊은 칭찬에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그래도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나 공감되고 동조가 되어 다시 한번 불을 태워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을 테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조금 더 관조적이고 객관적으로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해야 할까. 아님, 열정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또 아님, 늙어버린 건가. 고마워하는 마음은 예전 그런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기도 한데, 치열하게 다시 해봐야겠다는 도전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래서 함께 만난 유성용 교수님에게도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성실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바랐던 성공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고.


그래, 하루하루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거다.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기는 구름 속에 있는 성공이라는 신화를 위해 희생되어지는 현재가 아니라, 거기서 행복과 살아있음을 느끼며 성실하고 정의롭고 또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야하는 나의 삶 자체이다.


정말 반가웠다. Young Min Oh.

그리고 만나서 영광이었어요, Sungyong You 교수님. 어제 모처럼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감자탕에 소주도 기가 막혔어요. 비록 한잔밖에 못 받았지만서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