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칼 바르트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45
칼 바르트를 읽는다. 신학을 하기 위함도, 칼 바르트를 연구하기 위함도, 뭔가 답을 찾기 위함도 아니다. 문학과 철학과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다시 책을 손에 든 지 2년 남짓, 그저 나의 여정 중에 칼 바르트를 만나게 된 거다. 운명 같은 기분이랄까. 우연같지만 필연같은 느낌. 그는 꼭 지나가야만 하는 길목같다.
비신학자로서 별다른 선행학습이나 커리큐럼도 없이 그를 공부한다. 물론 충분히 느릴테다. 그러나 묘한 자유함이 있다. 난 그게 좋다.
그가 왜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인지, 그에 대한 일관되지 않은 평가들은 무엇 때문인지 알고 싶다. 그래서 그에 대한 강의록과 책들을 읽는다. 어젠 퇴근 후 거의 2시간동안 그를 읽었다. 한 사람이지만 그의 신학적인 발전으로 인해 두 사람처럼 나뉜 전기/후기 칼 바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 예정론과 화해론, 그리고 그의 저서 전체에 흐르는 성령론을 훑었다. 그를 오해하고 비난을 일삼는 데 인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칼 바르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에 소개하여 한국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편향된 인상을 심어준 역사도 훑었다. 바르트가 죽고 몰트만이 나름 결론지어버린 만인구원론에 대한 부분도 읽었다.
칼 바르트를 읽고 있자니 기독교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뜻밖의 소득이다. 비효율적이고 비전문적이겠지만 아마 한동안은 칼 바르트라는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