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마흔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53

일상을 잃어도 괜찮았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여겼다. 토할 것 같은 분주함 속에서도 그 생각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것도 모자라 그 안에 설치해둔 가상의 쳇바퀴를 돌릴 때조차 포기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일깨워주는 역할까지 그 생각은 감당했었던 것이다. 이 덫 안에는 가상의 쳇바퀴뿐 아니라 궁극의 적이 존재한다. 물론 그 적은 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지만, 반드시 사악해야만 했다. 가지고 있는 신앙과 맞아 떨어지면 더할 나위 없었다. 쳇바퀴를 돌리게 하기 위해서, 어쨌거나 실제의 적은 나로 하여금 내 안에서 가상의 적을 만들게 하여, 마치 쳇바퀴를 돌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싸워야 할 실제의 적은 뒤로 저만치 물러나 팝콘을 먹으며 낄낄대며 구경하고 있었다.


늘 따라붙는, 그리고 언제나 승리하는, 위로 아닌 위로가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말,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말이 그것이다. 나름 시행착오를 거치며 일궈낸 독립 투사 정신으로, 내 안에 만들어진 적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조작된 힘겨움에 지칠 때면, 이 위로는 효과가 의외로 강했다. 이성뿐 아니라 감정적이고 의지적인 부분까지 아주 세밀하게 기만하고 있는 무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는 나의 내면세계였다.


그 매트릭스로부터 나온 이후 (매트릭스는 겹겹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또 다른 더 큰 매트릭스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은 무한히 매트릭스를 탈출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나의 좌표가 보이고 남들이 보인다.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과, 그 공감을 넘어서서, 때론 뒤로 쳐지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감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빨리 가는 것에 대한, 주류 사회에 대한, 성공에 대한, 인정에 대한 의미가 바뀌어 간다.


오늘은 내 생일. 나이 마흔. 일상을 잡는다. 드디어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