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익숙한 일상적 폭력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24. 05:11

부탁이 강요로 느껴질 때의 반응은 두 가지, 복종 아니면 반항이다. 어떤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반응의 문제가 아니라 자극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범인은 복종도 반항도 아닌 강요다.


거친 부탁, 부드러운 강요, 마치 부탁과 강요에도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처럼 본질을 희석시키는 표현이다. 어불성설이다. 부탁은 부드러움을, 강요는 거침을 이미 그 말에 포함한다. 부탁을 거칠게 하면 강요가 되며, 아무리 부드러운 말투로 한다한들 강요는 강요다. 범인은 천사의 옷을 입어도 범인인 것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혼이 난다. 복종도 한 두번, 복종의 옷을 입고 있었던 반항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일차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의 문제는 아이의 반항이다. 버릇이 잘못 길들여졌거나 건방지다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철부지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사건은 전적인 부모의 권위에 의해서 순식간에 종결된다. 결국 정작 피해자인 아이를 곧 처벌받을 범인으로 둔갑시킨다.


흔히 일어나는 일상적인 에피소드일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약자에게 폭력을 행한다. 그 폭력의 씨앗은 의식보다 더 아래, 잠재의식과 무의식 속에 심겨져 있다. 다만 많은 합리화와 함께 약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정제되어 표현될 뿐인 것이다. 인정해야 한다. 우린 일상적인 폭력의 가해자다.


아. 얼마나 더 깨져야 할 것인가!

회칠한 무덤 같은 자아의 한 껍질을 벗겨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