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무질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24. 05:13

반복되는 일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끊임없이 새롭다. 똑같은 하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오가는 길,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저 높이서 들려오는 새소리, 골목길을 접어들 무렵 풍겨오는 향긋한 빵 냄새와 커피 냄새. 매일 같은 것 같지만 항상 다르다. 디테일이 다르다. 나의 보폭이 다르고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르며 그 사람들과 마주친 거리도 다르다. 어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며 나던 새소리가 오늘은 한 나무에서만 들린다. 항상 동네 카페 한 구석 자리에 앉아 신문을 들고 커피를 마시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 테이블에 어떤 낯선 여자가 앉아 있다. 손에는 베이글이 들려 있고 지금 막 크림치즈를 바르려고 하던 차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신선하고도 놀라운 일상의 새로운 조합은 우리가 반복되고 단조로워 지겹다고 느끼는 그 삶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새로운 조합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너리즘이라고 하는 상태로 빠져드는 순간에도 사실 우린 늘 역사상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경험을 실시간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작은 것들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그것들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공상에 빠진다. 늘 똑같아 보이던 것들이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것이 마치 위대한 발견인 것마냥 즐거워한다. 덕분에 나와 내 삶을 이루던 사소한 것들이 비로소 제 이름이 불려진 것처럼 제각각 의미를 갖게 되고,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내 삶은 풍성하기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한꺼번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찾아온다.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그 순간은 내게 말한다. 몽상에서 벗어나라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위험하다고. 그러면 나는 아주 잠깐의 망설임 끝에, 마치 중요한 수업에 지각이나 한 듯 벌떡 일어나 잠에서 깨어나려 몸부림친다. 아름답고 풍성해졌던 나의 일상의 의미가 단번에 도피처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나는 잠시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나와 또 다른 나의 대화. 가끔 아주 냉철할 만큼 논리적이어서 나를 제 3자의 입장에서 관망할 수 있을 때는, 내가 어쩌면 정신병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소스라쳐 보기도 한다. 자괴감이란 이름의 감정과 그것의 원천인 내 중심의 자아,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인도하심. 이 양립될 수 없는 두 존재의 대립과 대화. 나의 왕국과 하나님나라와의 대립과 대화. 무질서. 나의 내면 세계의 현 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