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수면 아래 있던 유치한 열등감과 시기심은 작은 물결이 일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 물결이 만들어내는 파동의 높낮이는 개인의 숨겨진 인격이다. 어떤 이에게는 높지만, 다른 이에게는 여전히 잔잔함에 속할 수도 있다.
언제나 변함없는 관계를 꿈꾸지만, 일반적으로 그 꿈은 자신의 숨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의 잔잔한 물결일 때를 전제로 한다. 외부 자극에 의해서든 내부에서 불거져 나온 어두운 힘에 의해서든,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가 찾아올 때 그 꿈은 수정을 요구하거나 파괴된다.
사람은 경우에 따라 높아질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다. 높아짐과 낮아짐 그 자체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우린 그 요동으로부터 관계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믿고 신뢰해 왔던 사람과의 관계도 부지불식 간에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무너져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참 재밌다.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해 놓고서 우린 그 사람을 믿는다거나 신뢰한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이다. 한 사람을 모두 안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린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믿고 신뢰하는 존재인 것이다. 위험부담이 없을 수가 없다. 실망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실망스러운 사람이 있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에겐 실망스러운 존재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이런 푸념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이런 시기가 찾아올 때면 난 슬픔을 감출 수가 없다. 나름 믿고 신뢰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여러 증거에 의해서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고 아프다.
만남은 큰 기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슬픔으로 변해버릴 때도 있다. 아,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