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대중화에 담긴 좋은 소식
(한번에 쓴 글, 퇴고가 필요하니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적당히 알아서 읽으셔요.)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깊은 지식에 도달한다 해도, 그래서 그 수준에 이미 도달한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폭넓은 지식까지 얻게 된다 해도, 절대 다수인 서민들의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현학적인 표현과 겸손을 가장한 은근한 지식 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 페북에도 허다하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들 역시 자기네들끼리의 암묵적인 진영을 만들게 되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하고자 애쓰는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일부러 그들을 멀리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선이 가시화되기 전에 이미 갈라짐은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나누는 선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이것도 시간 문제다. 각 진영의 사이즈는 계속해서 진화하기 때문이다. 비대해지거나 사라지거나 한다. 비대해진 진영은 자기네들이 마치 선견자들의 모임인양 대표를 뽑고 관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라진 진영이 있다해서 사람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언제나 독립군이 존재하며 그 독립군을 서포트하는 소수가 존재한다. 이 둘의 조합이 죽이 맞아 새로운 대항 진영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다. 외로운 선견자로서 홀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남고 싶어하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이다. 이미 비대해진 진영에서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흩어진 독립군들의 존재를, 안 그런 척하지만, 늘 경계하고 주시한다. 마치 자기 진영으로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길 기대하는 것마냥.
위에 언급한 것은 내가 관찰한 지식인들의 존재 패턴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패턴의 유형이 아니다. 패턴이 어떻든 대부분 그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하기만 할 뿐, 그들의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래쪽으로는 향하지 않는다는 점을 난 여기서 말하고 싶다.
비대해진 진영에 속한 그들의 지식의 내용은 정말 훌륭하다. 그들의 열정과 탤런트, 그들끼리의 상부상조하여 얻어 낸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지식 체계의 구축, 독립군 수준으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다. 학계에서도 당연히 통용되며 어느새 필드에서의 그들의 입지는 탄탄해진다. 이 진영에 들어가기만 하면 떨어지는 국물이 많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그 진영의 멤버가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렇다고해서 독립군들의 지식이 형편 없는 건 아니다. 언제나 역사는 의외의 흐름이 유입될 때 큰 변화를 거치게 되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흐름은 보통 어딘가 존재하고 있었던 독립군들로부터다. 세상엔 일당백의 독립군들이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소위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인데, 어딘가 소속되어 부역하는 하는 일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리고 함께 하는 것보단 혼자 사유하는 자유로움이 그들에게는 훨씬 더 큰 유용한 연료이기 때문에, 그들은 늘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
이렇게 두 부류의 진영이 있지만, 공통점은 아까 말한대로 그들의 위를 향한 지식이다. 아래를 향한 지식, 그 지식을 지식인의 언어가 아닌 비지식인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사회를 윤택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비대해지는 진영에 속속들이 가입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이지 대중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대중화라는 단어를 앞장세워 뭔가를 하고 있다는 기획안을 내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자기 진영이 대단하다는 이미지를 높이기 위함이지 서민을 위한 기획안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라서 말장난처럼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지식의 대중화라는 기획안의 최종 수혜자는 대중이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바로는 최종 수혜자는 그 기획안을 실행했던 진영이었다. 물론 대중 역시 참여하여 혜택을 얻긴 했겠지만, 애당초 그들의 목적은 그들 진영의 이미지를 높여 이윤을 더 내기 위함이었지, 그들이 가진 것들을 대중에게 나누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혜택은 미미하고 불연속적이다. 이벤트로 보통 끝이 난다.
대중화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어느 쪽에 속해 있든지 간에 이미 가지고 있거나 얻어가고 있는 지식의 방향을 지식인들은 항상 점검해야만 한다. 의사들의 존재 이유는 환자들을 고치기 위함이지 환자들이 지불하는 돈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어느 지식인이나 그들의 존재 이유는 자신의 성공이 아니다. 방향은 나 자신에게 향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 향해야 한다. 사실 지식인들이 뒤로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만 않았어도 이 사회는 이렇게까지 기형적인 모습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람직한 대중화를 추구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이미 존재한다. 이들을 난 응원하며 진영을 이루게 되었을 때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체제로 유지되길 진심 기원한다. 그리고 어쩌면 지식인들 중 존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