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그녀는 이번에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난 그 말의 숨겨진 의미를 잘 안다. 익숙한 느낌. 그것이 끝없이 깊은 불만과 누적된 하소연의 전주곡임을 난 알고 있었다. 차라리 거칠게 터져 버렸으면 좋았을 그 순간, 난 그저, 그렇냐고, 그럼 됐다고 반응해 버리고 말았다. 가면 무도회가 선사해 준 그 불안한 고요함을 난 다시 선택하고 만 것이었다.
아름다운 날은 항상 지나고 나서야 곁으로 성큼 다가오는 법이다. 그 때의 휘몰아치던 감정도, 그 때의 침묵도, 보통은 겨우 실낱같은 흔적만을 남긴 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이 된다.
그러나 불안함은 여운이 짙다. 그것은 우리에게 내재된 죄악의 왕국으로 액세스할 수 있는 코드가 되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폭력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원만함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멸의 전조는 광란이 아니라 침묵인 법이다. 가면을 벗고 재기의 소망을 택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었지만, 난 그 기회를 애써 외면했다. 나만이 수면 아래 감춰진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거짓된 만족을 하며 그렇게 그 순간을 넘겨 버리고 만 것이다.
때로는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거짓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거짓의 본질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무리 거짓된 거라도 고요하면 그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결국의 열매를 예감할 때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은 전자이지만, 그 선택이 항상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과정이 나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함도 그리 나쁠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선택 직후의 죄책감과 마음의 불편함이 언제나 걸리지만, 그것조차도 한낱 감정의 동요 정도로 넘겨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지 솔직히 언제나 난 확신할 수가 없다. 정의와 불의의 경계가 늘 분명하지만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