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철들어간다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2. 4. 04:32


철들어간다.


전철로 출퇴근 하면 운전할 때보다 약 25분 정도 더 소요된다. 숫자만 따진다면 비효율적인 것이다. 그러나 난 그 25분이 좋아서 어지간하면 출퇴근 때 전철을 이용한다.


내게 있어 그 시간은 걷고 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순간이다. 한국에 있을 땐, 당연히 걸어다녔던 거리와 집 주위의 풍경들을 난 그저 무심코 지나쳤었다. 할수만 있다면 1분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었다. 길을 걷긴 걸어도 그것은 마치 장애물을 빨리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과도 같았다. 여유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지금 돌아보니 많이 아쉽다. 그땐 왜 그리 서둘렀을까? 1분 일찍 간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도 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효율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던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 절반이 참 아쉽다. (그 효율이 내게 남긴 영광의 흔적은 출세가 아니라 고혈압 진단이었다.ㅜㅜ)


낭만은 비효율적이다. 풍성한 삶은 효율만으론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느리게 갈 땐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빨리 가야할 땐 빠름의 미학을 즐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기를 잘 알고 누릴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이켜보면 난 느릴 땐 무언가를 탓해야만 했고, 빠를 땐 그것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야만 했던 것 같다. 정말 어렸다.


일부러 전철을 타고 여유를 즐긴다. 늙었다고 말하기 보단 철이 좀 들어간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