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나'라는 왕국의 왕에게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2. 15. 08:26

'나'라는 왕국의 왕에게.


토할 듯 바쁜 일상, 해야만 하는 일의 절반도 하지 못한 채 또 내일의 산더미 같은 새 일을 맞이하며 늘 처절한 좌절감과 자책감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본 적이 있다면, 일상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유독 바쁜 이들은 늘 자기네들이 과연 옳은 길을 효율적으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성공지향적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그들에게 있어서 일상이란 쓰잘데기 없고 무의미한 시간일 뿐이다. 차라리 없으면 좋을법한 시간, 귀찮고 성가신 의무들로 가득차 있는 시간일 뿐이다. 잠 안자고 더 일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 거금을 들여서라도 사내고 말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들의 눈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다. 만약 그들에게 내일이 없다면 아마 대부분은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희생제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오늘이란 땔감을 태워 내일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내일을 기대하는 희망으로 오늘을 산다고, 그래서 빡빡한 오늘도 살아낼 수 있다고.


그런데 과연 이런 것들이 진정 희망일까? 그들이 가진 그 유일한 힘과 같은 내일의 희망이 과연 그들에게 희망으로 작용할까? 아니면, 오늘을 어쨌거나 살아내야 하는 그럴듯한 변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특히나 그것이 불의한 타인에 의한 강압이 아니라 자의로 선택한 삶이라면, 그 선택으로 인해 희생되거나 피해를 입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불의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죄’지만, 자기가 자기 삶에 있어서 불의한 자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죄다. 어쩌면 더 큰 죄다. 그러므로 그런 삶을 영위하면서 그 삶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따위의 신앙생활이 과연 신앙생활일까? 치명적인 죄를 그대로 간직한 채 분주함과 열심의 일환으로 투자하는 신앙생활이 과연 신앙생활일까? 시간이 갈수록 자기로만 가득 채워지는 그런 삶이 어떻게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게 자신으로 채워져 나중에는 도대체 어떤 것이 자신인지 모를 때까지 치닫아봐야 정신차리겠는가!


당신의 눈에는 타인의 낭만과 여유가 아니꼽게 보이겠지. 빈정대고 싶겠지. 그런 사람 보면, 세상사 전혀 모르는 어린애로 취급하고 싶겠지. 마치 자신은 어른인마냥 한마디 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겠지. 공장 열심히 돌리는 당신이 볼 땐, 기타치며 노래하는 자들이 한심해 보이겠지. 이해해. 그러나 그 반대도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여유있는 자가 볼 때, 당신이 돌리는 공장은 그저 다람쥐 쳇바퀴로 보인다는 걸 말이야. 그리고 혹시 알아? 당신보다 훨씬 더 능력이 출중해서 공장 다 돌린 뒤 맘껏 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잖아. 제발 안경 좀 벗어. 안경 벗고 눈을 좀 뜨고 얘기해. 안올지도 모를 내일의 행복을 위해 매일 불행한 오늘을 살아내는, 이 작디작은 ‘나’라는 왕국의 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