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황당 에피소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2. 22. 02:45

황당 에피소드.


NIW (National Interest Waiver)로 영주권을 신청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이민 청원서 (Immigration Petition)라고 불리는 I-140와 신분 변경/영주권 신청서 (Adjustment of Status)라고 알려진 I-485가 그것이다. 영주권 신청 절차와 서류 준비 과정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에 신청자들의 대부분은 변호사를 고용한다.


고용된 변호사가 가장 중요하게 관여하는 부분은 I-140 서류 준비 과정인데, 그 중에서도 Cover Letter 작성과 References로부터 받아야 하는 추천서의 양식이다. 성공률이 높은 변호사는 다른 사람과 절대 공유하지 않는 자기만의 고유한 글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는 물론 돈이 든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내 주위에선 서류 제출 비용 (한 사람 당 약 2천 달러)을 제외하고, 변호사비만 해서 5천 달러 (약 550만원) 미만으로 지불한 경우는 보질 못했다. 그러나 만 달러 (약 1100만원) 넘게 지불했다는 경우는 몇 차례 봤다. 변호사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난 변호사 없이 그냥 혼자서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제출했다. 그래서 내가 지불한 비용은 최소한의 금액, 즉 서류 제출 비용과 신체검사 보고서를 위한 금액밖에 없다. 물론 내게 돈이 있었다면 당연히 나도 변호사를 고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겐 돈이 없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반드시 거주해야만 하겠다는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영주권 신청해서 만약에 거절이 되면 한국에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혼자서 지지고 볶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시간과 공을 들여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몇 달 전 여러 페친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내가 제출했던 I-140가 1년 만에 승인되었다. 이제 남은 건 I-485였다. 그런데 2주 전 메일이 하나 날라왔다. I-485를 진행하기 위해 다시 신체검사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2016년 11월 말, 처음 영주권 신청서를 제출할 때 함께 제출했던 보고서였다. 그런데 그 보고서의 유효기간이 1년밖에 안 된다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메일을 받자마자 난 다시 클리닉에 찾아가서 동일한 신체검사를 했다.


신체검사라고 해봐야 별 거 없다. 예방 접종 완료 여부, TB (결핵) 테스트, 피 검사, 그리고 오줌 검사가 다다. 난 예방 접종은 이미 완료했으므로 TB 테스트와 피 검사와 오줌 검사만 다시 하면 됐었다. 1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가격은 200달러가 넘게 들었다 (ㅜㅜ). 이틀 후에 클리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냥 검사보고서를 가져가라는 내용이 아니라 이번에는 꼭 의사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는데, 자세한 대답은 할 수 없으니 아무튼 의사를 꼭 만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으로 다음 날 약속을 잡고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가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만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치 날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리고 그러면서도 마치 날 다 이해한다는 얼굴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As you see, you are gonorrhea positive."


"WHAT!!??"


난 당연히 검사 결과를 의심했고 그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첨엔 그런 줄 알고 재검을 요구했는데, 재검 결과 역시 양성이라는 것이었다. 난 당연히 그 검사를 실행했던 실험실에서 뭔가 잘못되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 (알다시피 난 실험실에서 뼈가 굵은 생물학 박사다. 그런 간단한 테스트가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토론할 줄도 안다.), 그래서 내 오줌이 다른 사람 것이랑 바뀌었던지, 검사하는 동안 오염이 되었던지 했을 거라고 의사에게 말을 했는데, 그 의사는 그저 다시 실실 쪼개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Don't worry. This result doesn't affect your immigration. I will make a prescription for you. Then you can take the medicine."


"WHAT!!??"


어이 상실이었다. 그 의사는 내가 성병에 걸린 것을 애써 감추려고 했지만 오줌 검사 때문에 들켜버린 개망나니 정도로 보는 듯했다. 처방전을 쓰려고 자기 오피스로 들어간 의사를 뒤로 하고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에게 내가 다시 내 돈 내고 다른 곳에서 오줌 검사를 할 테니 주위의 실험실 몇 군데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일주일이 지난 어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Mr. Kim, XX laboratory sent their test result. It was you are gonorrhea negative. I don't know what happened at the first lab. You can pick it up anytime by 5 pm."


이 황당 에피소드는 이렇게 끝이 났다. 웃긴 건, 전혀 말도 안 되는 검사 결과 (false positive)에도 내 마음이 걱정으로 가득 차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혹시나 성접촉 이외의 어떤 재수 없는 우연찮은 경로로 내가 진짜 임질에 양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내가 가진 의학적인 지식과 의사인 아내의 조언도 모두 그 검사결과가 잘못되었단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떡 하니 공식문서에 적힌 검사 결과를 마주했을 땐, 그리고 의사가 그것을 확실히 믿고 약까지 먹으라고 권유했을 땐, 정말이지 겁이 나기도 했었다.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노는 상황을 경험했던 것이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하는 말과 공식 문서의 힘을 생각해 본다. 그것이 무력한 약자에게는 얼마나 크게 다가갈까? 충분히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그 사람의 운명도 좌지우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내 경우는 다행이다. 내가 그 의사에게 대들어서 검사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돈과 시간을 들여서 재검을 시도했던 것도 참 잘했단 생각이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내가 gonorrhea negative라는 당연한 사실이 말이다. ㅋㅋ 이건 거짓된 판결에서 승리를 찾아낸 쾌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