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과 맹신
분별과 맹신.
은혜롭고, 감동을 주며, 가끔은 한 사람의 운명도 바꾸는 말이 언제나 정의롭고 도덕적인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언행일치를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덕목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깨달음과 영감을 주는 말도 불의하고 비도덕적인, 게다가 그것들을 감쪽같이 감추면서 경건한 척하는 파렴치한 인간의 입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반드시 알고 인정해야 한다.
미투 운동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억눌렸던, 숨겨왔던, 그래서 결코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수십년을 살아온 피해자들의 입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팩트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권 교체가 되었으니 이런 현상도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동안 피해자들이 살아왔던 힘겨운 나날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진실들이 드러나지 않은 채 무덤까지 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아,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인격체라는 인간의 존재, 결코 일관적이지 않다. 인간은 하나의 몸과 하나의 영혼을 가졌으나, 그 안에 내재된 자아는 하나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정신병이라고 진단하는 조울증이나 다중인격장애 같은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런 공식적인 병명을 부여받지 않은 일명 '정상인'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 모든 인간의 삶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이를 성장, 성숙시켜가는 여정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면의 여러 목소리를 듣고 잘 조율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그 길고 긴 성장과 성숙의 여정 가운데 순간순간 얻을 수 있는 작은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감동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결코 그 말과 말한 사람을 동일시하면 안될 것이다. 우린 다들 한 번씩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의 말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하다가도, 어느 날 그 사람이 못돼먹은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큰 실망감과 배신감. 물론 우리 멋대로 믿고 우리 멋대로 우러러 본 것이기 때문에 실망과 배신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지만, 이런 경험으로 우린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부분에 있어서 적지 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상처를 받지 않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고, 들은 말을 무조건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답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우린 앞으로도 사람의 말을 믿었다가 실망하고, 상처받고, 그래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더 조심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단, 자의가 아닌 타인의 강권적인 압력에 의해서 노예처럼 맹신을 요구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중에 또 어떤 사람을 믿고 존경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믿고 존경할 만하다고 일반화시키지 않을 수는 있을 것라 생각한다. 맹신이라 부를 수도 있는 그 암묵적인 일반화의 과정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그 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이윤을 취하는 사기꾼들이, 그리고 끊임없이 삼킬 자를 찾으며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를 빨아먹고 그것을 권력 삼는 파렴치한들이 이 세상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본적인 분별력이란 것은 그런 맹신에만 빠지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분별력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이지, 새롭게 취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결점 하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그 사람도 인간이고 불완전한 존재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윗조차 밧세바를 범했다. 인간은 도긴개긴인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이런 생각이 상대방을 존경하지 않는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이미 자신이 맹신의 단계에 들어서지 않았나 곰곰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