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의 동선은 그림에서 보이는 초록색의 커다란 산맥 아래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일하는 City of Hope 병원은 Duarte라는 조그만 도시 (그림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여기도 Duarte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에 메인 캠퍼스를 가지고 있으며, 내가 사는 아파트는 South Pasadena라는 더 조그만 도시 (역시 그림에서 나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남쪽에 위치한 Pasadena의 일부로 생각하는데, 독립된 도시다)에 위치해 있다. 어지간해서 나는 Pasadena 근처를 배회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출근길에서 저 커다란 산자락을 바라보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무심코 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산 꼭대기마다 눈이 쌓여 있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어제 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비가 내리더니 그 비가 아마도 저 산 위에선 눈이었나보다. 놀라운 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이 아직 녹여내지 못한 뜻밖의 광경. 비록 민둥산이 많아 한국이나 미국 동부에서 바라보는 산에 비하면 볼품없다 말할 수 있겠지만, 난 오늘 눈 덮인 산을 보면서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해마다 듣는 말 중 하나는 기상이변이라는 것이다. 여기 서던 캘리포니아에도 조금씩 이변이 일어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년후면 아마 온도도 영하로 떨어져 얼음도 얼고 진짜 눈도 내리지 않을까. 경제적으론 엄청난 후폭풍이 있겠지만, 이기적인 내 안의 감상적인 자아는 은근히 그 이변을 벌써부터 환영하고 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