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작별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3. 17. 06:13

작별.


그가 갑자기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했다. 7월 전에 떠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정오에 들을만한 세미나가 있었는데도, 난 당연히 친구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작년 말 애틀랜타에서 열렸던 ASH에서 나와 함께 구두 발표자로 선정되었던 친구다. 재능이 나보다 뛰어났고, 나처럼 사이언스가 좋아 금발 백인의 토종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여태껏 포닥으로 일해오고 있었다 (이 바닥에는 절반 이상의 포닥이 중국인, 나머지 절반의 절반 이상이 인도인을 비롯한 외국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발 백인 토종 미국인은 찾기 어렵다. 갈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나랑 통하는 게 많아서 참 좋았다. ASH에서도 함께 맥주 마시며 밥도 같이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멋진 친구였다.


그러나 그가 몸담고 있던 랩에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보스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랩에서 2인자 자리에 위치한 연구 조교수, 또 그 조교수와 쌍벽을 이루며 과학을 이용해 신분상승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staff scientist의 cheating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과학을 그저 성공 수단 정도로 타락시킨 그들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하자니 함께 불의를 행해야만 하는 상황도 연출되기도 했던 것이다.


랩을 옮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알다시피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안된다고 했다. 아카데미가 진절머리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손엔 미국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나보다 훨씬 더 많았다. 아, 나도 미국인이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아카데미에 남아 있었을까?


어떤 기업체에서 그를 고용하기로 했다고 했다. 티칭 칼리지에도 지원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일단은 자기를 고용한 기업체에 들어가서 몇 달 일해본 후, 티칭 칼리지에서 오퍼가 온다면, 그때 다시 옮길지 말지 결정하겠노라 했다.


지금까지 삶의 중추를 이뤄오던 아카데믹 사이언스를 좋지 않은 이유로 떠나게 된 친구가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여러 군데서 지원하기만 하면 문이 열리고 열린 문들 중에 골라잡으면 된다는 부분에 있어선 솔직히 많이 부러웠다.


우린 맛있는 중국 식당에 가서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셋이서 맛있게 먹었다.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동안 맘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없었는데, 내가 유일한 친구였다며 고맙다고 했다. 한 번도 예수 믿으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일터 현장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살고 있는 단면을 이 친구에게서 확인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울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꾸준히 한 우물 파고 있는 것이 꼭 장인 정신을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거기에 나도 포함되는 것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야. 거기서도 늘 그랬듯 정의롭게 살아가렴. 널 응원하마. 나도 미래가 불분명하지만, 현재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정의롭고 공의로운 삶을 살도록 노력할게. 또 만나면 맥주나 같이 하자. 그 땐 내가 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