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볼 하키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3. 27. 00:22

볼 하키.


운동 좀 하자고 YMCA에 가족 회원권으로 등록한 지 벌써 반 년이 다 되어간다. 맞벌이 부부인데다 둘 다 시간이 많이 소비되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서, 마음과는 달리 운동하러 거의 가질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월회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그나마 그 우려를 덜어주는 건 아들 녀석이 수강하는 수영과 볼 하키 클래스의 회원 할인 덕택이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볼 하키가 하고 싶다고 했다. 볼 하키가 뭔지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보니, 유니폼이 멋지게 보이기 때문이랬다. 이런 건 시켜도 잘 안하려고 하는 녀석이기에, 스스로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말에 아내와 나는 선뜻 호응을 해줬다. 곧장 등록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솔직히 운동 신경이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좀 굼뜬 스타일이라 그런지 연습할 때나 시합할 때 아들에게선 공에 대한 집착이나 이겨야겠다는 간절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전혀. 잘 뛰어다니지도 않고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기조차 했다.


왜 공을 치지 않냐고 물어보니, 한다는 말이 양보하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같은 편에게 양보하는 거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상대편에게 공을 양보하는 건 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먼저 쳐서 이겨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한다는 말이 상대방이 공을 빵 쳤을 때 자기가 딱 하고 막으면 되지 않겠냐는 거였다. 자기는 그게 더 어울린다고 했다. 헐...


재밌다. 내 아들인데 운동 경기할 때의 나와 전혀 반대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오늘 그 멋진 유니폼 입고 기어도 장착하고 사진 하나 찍어줬다. 녀석. 9살이지만 아직은 애기야. 사랑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