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교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교만.
저기 저 우편에서 여전히 꽈리를 틀고 자리를 펴고 앉아계신 분들을 만나면, 모든 게 은혜롭게 (?) 막연해져서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느낌적 느낌에 휩싸일 때가 많다. 거기서 난 온갖 좋은 교회 용어들이 총동원되어 적잖은 위로를 받게 된다. 기어이 내가 또 교만했었다는 사실을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다분히 이분법적인 구분에 그 어떤 이의도 달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저 죄인의 괴수가 되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겸손하고 온유한 평화의 얼굴로 잘못을 뉘우치고 무릎을 꿇으면, 그들의 얼굴에선 그제서야 대만족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고나서 그들은 항상 빠뜨리지 않고 말한다. 다 하나님이 하신 거라고. 자기는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반면, 저기 저 왼쪽의 첨단으로 열심히 도망치듯 달려가고 계신 분들을 만나면, 손에 확 잡히는 삶의 모나고 망가지고 깨진 부분을, 적나라하지만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조목조목 돌아보게 되고, 나 또한 하나의 육신을 입은 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자책 섞인 반성이라기 보단, 나도 그리 잘못된 게 아니라는 생각에 적잖은 위로를 받는다. 구름 속에 거니는 듯한 기분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대신 현실적이고 치열한 일상과 그 가운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오른쪽 끝에선 결코 보지 못했던, 삶으로 연결되는 신앙의 물꼬가, 왼쪽으로 가는 그 어딘가에서부터 트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재밌는 사실은, 양쪽 모두에게서 난 교만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만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 어느 곳에나 발현된다. 그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인간의 특정 지표임이 틀림없다.
하나밖에 모르는 고집과 아집이 누군가에겐 교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편에 자리 펴고 계신 분들은 좀 아셨으면 좋겠다. 다양성은 진리의 반대말이 아니다. 진리는 절대 닫혀서 고인 장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쇄국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탁 트인 곳에서도, 수많은 다양성에 둘러싸인 곳에서도 빛을 발하는 그 무엇이 진리일 것이다.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진리의 수호자, 당신들만이 진리의 수호자가 아님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아무도 그렇게 임명한 적이 없다. 착각은 혼자서 해도 난처한데, 집단적으로 하면 참 곤란하다.
왼쪽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들은 자신이 경험한 역경과 고난을 제발 훈장으로 만들어 아직도 자기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깨인 사람처럼 입지를 세우려거나 가르치려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치 자기는 모든 것에 열린 마음을 견지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싶어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자기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보다 뒤쳐져있는 것처럼 여기고, 그들을 답답해하며 은근한 비웃음이 깃든 그 뻐김에 도취되어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차례 당신들로부터 은근한 무시를 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부탁한다.
페북 덕분에 좌우에 치우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또 치우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만난다. 어떤 이는 비판 섞인 부정적인 말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훈수를 둔다. 나도 그 중 어디 쯤엔가 하나이겠지만, 좌우에 상관없이 가르치려고만 든다면, 사양하겠다. 교만한 당신의 옳은 생각, 별로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