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Willfulness vs. Willingness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5. 8. 03:54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다가 갑자기 클릭되어서 써내려간 글**


Two Will: Willfulness vs. Willingness.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고, 최후에는 그 둘 중에서도 하나만을 선택하게끔 되어있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싶다. 선과 악의 선택. 그러나 인간의 죄된 속성인 교만은 선과 악을 선과 '선'으로 둔갑시켜 놓았다. 뇌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해 기능에 문제가 생긴 소수를 제외하고는, 악한 사람도 참된 선을 선으로 인지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선, 고도로 발달된 그들의 위장술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짓을 일삼는 이유는 숨겨야만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숨기기로 작정했다는 것은 그것이 떳떳하지 못한 것, 즉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이 악한 이유는 그들이 선을 선으로 인지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데에 방점이 있다. 오히려 그들은 악이 악인줄 알면서도 그 악을 선으로 바꿔놓으려고 시도한다. 우린 이것을 자기 합리화라고도 부른다. 악인은 자기 합리화의 귀재인 것이다. 다양성이니 상대성이니 하면서 참 선을 무력화시키고, 참 악을 정반대의 위치에서 동등한 위치로 가져다 놓거나, 아니면 두 위치를 역전시킨다. 그리고 거기에는 언제나 치밀한 논리가 있다. 그들은 그 논리를 24시간, 365일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갖추고야 만다. 그 합리화의 논리는 그들의 분신과 다름 없는 것이다. 그들이 그 분신을 하나씩 만들어 나갈 때마다 그들의 악함은 더욱 견고해져 간다.


잘못된 한 가지를 믿기 시작했다면, 그것의 최후는 둘 중 하나다. 만성 파멸이냐, 급성 파멸이냐, 바로 이 두 가지다. 그렇다. 어쨌거나 파멸은 파멸이지만, 그저 시기가 다를 뿐이다. 자유 의지라고 멋적게 이름 붙인 그 선택의 권한에는 어쩌면 진정한 자유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파멸할 자유를 자유함이라고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결국 자신의 교만함을 넘고 자신을 굴복시켜 선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만이 애초에 바른 선택으로 주어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순종이냐, 불순종이냐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불순종은 악이요 파멸이기 때문에, 실로 자유 의지가 인간에게 필요하고 좋은 선물이라면, 그 종말은 순종으로 귀결이 나야만 하는 것이고, 결국 이 문제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순종할 시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달리 말해, 그 시기를 얼마나 질질 끌 것인지에 달린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파멸함에서 자유를 느끼는, 그런 변태적인 성향을 가지지 않는 한, Willfulness는 결국 Willingness로 가기 위한 미성숙한 전 단계 정도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죽을 때까지 미성숙으로 남을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Willingness를 분별하여 필요없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되길 소망해본다. 바른 순종은 빠른 순종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영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